본문 바로가기

한반도평화

탈북 청소년 강제 북송 문제, 해법은?

라오스 정부가 중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에 도착한 ‘꽃제비’ 출신 청소년 9명을 북한으로 강제 추방한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지난 5월 10일 중국-라오스 국경을 넘은 뒤 불심검문에서 라오스 경찰에 붙잡혀 이민국에 억류되어 조사를 받았다. 라오스는 이들의 희망과 달리 탈북 청소년들을 북한당국에 넘겼고 북한은 치밀한 준비 아래 베이징을 거쳐 신속하게 북한으로 송환해 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당국은 강제북송 청소년의 안전을 보장해야

 

이번 사건의 경우 지금까지 여론에 알려졌던 탈북자의 강제송환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탈북자 문제는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에게 체포되어 북한으로 강제로 송환되면서 여론화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중국 내에 있던 탈북자의 강제송환이 주된 ‘문제’였던 것이다. 반면 이번에는 이미 중국을 벗어나 제3국에서 한국으로 오기를 희망하는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되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커졌다. 한국행을 기도하다 송환되면 북한당국은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에 송환된 탈북자들의 경우 한국행을 기도하였다는 점에서 안전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 5일 한국 서울 외교부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탈북민 고미화씨가 라오스에서 강제 북송된 청소년들의 사진을 든 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탈북자 문제에 우호적으로 협조하던 라오스가 이례적으로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하는 데 협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북한당국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오는 동남아의 비공식루트가 위험에 처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려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탈북 청소년들이 북한으로 송환된 직후 국제사회에서 라오스와 중국의 비인도적 행태에 대해 비판하는 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또한 국제사회는 한목소리로 북한당국으로 하여금 이들 탈북 청소년을 인권적으로 대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강제송환된 탈북 청소년들의 안전에 우려를 표명했고,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는 중국과 라오스에 북송 당시의 상황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미 국무부도 “이번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명한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와 국제엠네스티(AI)도 이번 사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북한당국은 이들 청소년들이 왜 탈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자성하고 국제사회의 우려에 귀를 기울여 이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어야 하며, 어떤 경우에도 박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당국의 말대로 탈북 청소년들의 라오스행이 ‘강제 납치’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이들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따뜻하게 대우해주는 것이 도리이며, 만일 이들에게 처벌이 가해진다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로 될 것이다.

 

관련국의 협조를 이끌어낼 분명한 정책원칙을 정립해야


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 외교공관의 안이한 대처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번 사건의 발생 원인과 처리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철저하게 진단해서 탈북자들이 안전하게 우리 사회로 들어올 수 있도록 관련국과 긴밀한 협조체계를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의 탈북자 정책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제3국 내 탈북자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탈북자 ‘문제’의 본질과 그러한 문제에 얽혀 있는 정책환경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어야 한다.


1990년대 북한의 경제난으로 촉발된 탈북행렬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정점에 달했던 중국 내 탈북자 규모는 현재 1만~2만여 명 정도로 추산되는 등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중국 내에서 장기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탈북자들은 여전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특히 여성 중심의 탈북 현상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탈북 여성과 중국 남성 사이에 출생한 아동문제가 또 하나의 새로운 현안이 되고 있다.


한편 남한에 이미 정착한 탈북자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남한으로 데려오려는 기획성 탈북이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신규 탈북자들이 중국에 체류하기보다 단기간의 중국 체류를 거쳐 동남아 국가를 통해 남한으로 직행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탈북자들에게 ‘체류지’이자 제3국 정착을 위한 ‘경유지’라는 복합적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탈북자 ‘문제’는 중국 내 장기체류 탈북자와 탈북 여성이 출산한 아동의 보호,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자의 안정적 입국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중국 내 탈북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동시에 처음부터 한국행을 염두에 두고 북한을 떠나는 탈북자들이 안전하게 중국을 거쳐 제3국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관련 국가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국으로부터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탈북자 정책에 대한 분명한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탈북자 문제에 대한 해결원칙이 모호한 상태에서 중국을 향해 목소리만 높임으로써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탈북자 정책과 관련하여 현실에 부합하는 분명한 원칙을 정립하기를 기대해본다.


이러한 원칙에는 무엇보다도 북한 및 중국과 동남아 관련 국가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중국은 한국이 탈북자 문제를 이용해서 북한사회를 흔들려 한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탈북자도 한국 국민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등의 우리식 주장만을 내세운다면 중국정부의 협조를 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탈북자 문제는 어떤 경우에도 인권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목표가 성취되기 위해서도 탈북자 문제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해소해나갈 필요가 있다. 재입북한 탈북자들을 내세운 기자회견을 통해 탈북을 차단하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등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탈북자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한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는 인도적 입장에서 전원 수용한다”,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북송에 반대한다”는 원칙 아래, 탈북 문제의 근원을 해소하기 위한 북한의 경제자립 지원 문제에도 분명한 입장을 표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남북 간에 진정한 신뢰를 쌓아 민족공동체를 완성해 나가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탈북자들의 성공적 정착은 탈정치화로부터


우리 사회가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들이 겪고 있는 인간적 고통을 해소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통일한국의 미래상으로 접근해 나가는 데 있어 탈북자들의 성공적인 우리 사회 정착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실질적 통일준비라는 국정과제 아래 탈북민의 맞춤형 정착을 강화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은 바람직하게 설정되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책이 실질적으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사회 내에서 탈북자 문제가 지나치게 정치화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일부 탈북자들이 시위나 SNS 활동, 단체 결성,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직접적인 정치행위를 하고 있고, 그로 인해 남남갈등 조장과 남북관계 악화라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탈북자들을 진심으로 포용하고 도와주기보다는 이들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부쩍 늘어나고 있는 사례들에서 보듯이 북한에서도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북한으로 오게 만든 후 기자회견 등을 통해 대남 비방과 체제선전에 활용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남북 모두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계속되는 한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강제북송 사태, 북한인권법 제정과 연계시키지 말아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각에서 북한인권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탈북 청소년들의 강제북송 사태는 북한인권법과는 관련이 없다. 오히려 우리 외교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를 북한인권법 제정과 연계시키려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지금으로서는 이들 탈북 청소년들의 안전이 보장되도록 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탈북자 문제를 자신의 정파적 이익을 잣대로 하여 다루려는 자세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이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존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만이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76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