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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남북한 대결 국면, '선조치 후보고'의 위험성

2013년은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에서 뜻깊은 해이다. 오는 7월 27일은 잠정적이나마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을 끝내고 정전협정을 체결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또한 10월 1일은 오랫동안 한국방위의 한 축을 담당하며 안전판 역할을 했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그에 앞선 6월 30일은 군사적 충돌 상황에서도 남북한 간에 희망의 끈을 이어주고 있는 개성공단이 문을 연 지 1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2003년 6월 착공식을 갖고 개성공단의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떴고, 남북관계의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수만 명의 남북 주민이 한 지역에 모여 생산활동에 협력하고 있다. 

 

북의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전쟁의 도화선이 될 것인가

 

이처럼 올해가 남북관계사에서 평화와 협력의 큰 획을 그은 의미 있는 해임에도, 금년 들어 남북 간에는 험악한 군사적 충돌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과 같은 도발, 유엔안보리 제재 결의와 그에 대한 북한의 반발과 위협이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마침내 지난 3월 5일 북한군 최고사령부가 성명을 발표하여, 키 리졸브 연습이 시작되는 3월 11일부터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유엔사․북한군 장성급회담의 창구인 북한군 판문점대표부를 해체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3월 8일에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불가침에 관한 모든 남북합의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의 파기, 판문점연락통로 폐쇄 등을 선언했다.

 

그 뒤에도 북한은 각종 성명과 언론해설, 대규모 군중동원을 통해 연일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3월 14일 조평통 서기국은 “오늘의 엄중한 사태를 지난 시기처럼 말 대 말의 대결로 오산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3월 16일 외무성 대변인은 핵보유의 목적이 “반세기 이상에 걸친 미국의 끈질긴 핵위협 공갈에 종지부를 찍고 침략의 본거지들을 지구상 그 어디에 있든 무자비하게 징벌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3월 17일 조국전선 중앙위원회도 “핵전쟁 위기” 운운하며 전쟁불사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북한당국의 전쟁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처럼 우리 사회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전쟁 발발에 가장 예민해야 할 주식시장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고 대형마트에서 사재기하는 시민들도 없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북한의 핵 공갈에도 동요하지 않는 것은 과거의 학습효과이거나 한․미연합전력에 대한 믿음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김관진 장관이 중부전선의 한 육군 GOP(전방초소)를 방문해 과학화 감시장비를 살펴보고 있다.(국방일보)


우발적 충돌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선(先)조치, 후(後)보고’ 체계의 위험성

 

하지만 우리 사회 그 누구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이 군사력의 강도가 밀집된 휴전선과 서해 5도 일대에서는 사소한 남북한의 우발충돌이 언제라도 국지전 또는 전면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반드시 전쟁이 아니더라도 당초 구상했던 국가전략의 틀이 망가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남북한의 우발적 충돌이 국지전․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선(先)조치, 후(後)보고’ 체계의 위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남북한은 이러한 체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일선 병사의 실수나 지휘관의 오판에 의해서도 우발적 충돌이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

 

2010년 11월 북한에 의한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국방부는 ‘선조치, 후보고’ 지침을 하달했다. 이 지침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2010년 12월 전군지휘관 회의와 2011년 3월 전방부대 시찰 시 등 두 차례에 걸쳐 지침을 직접 내린 것이다. 이러한 지침은 일선부대의 자위권을 광범위하게 허용한 것으로, 정부 스스로 문민통제를 포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지침은 북한의 고의적인 무력도발이 있을 때는 어느 정도 타당할 수 있지만, 만약 북한군의 우발적인 도발일 경우에는 일선 부대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남북한군의 충돌이 발생해 자칫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실제로 2011년 6월 17일 강화도 부근 교동도에서 해병대 대공감시초병 2명이 119명을 태운 아시아나항공 민항기를 북한비행기로 오인해 이 지침에 따라 99발이나 총격을 가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총알이 비행기에 맞지 않아 대형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결국 김관진 국방장관이 공식적으로 국민에게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선조치 후보고’의 위험성은 북한에서 발생한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관계를 크게 경색시킨 발단은 바로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이다. 북한의 거부로 아직 명확히 사건의 진상이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당시 10대의 북한군 여성초병이 ‘선조치 후보고’ 지침에 따라 정지명령을 따르지 않은 민간인 관광객에게 총을 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현재와 같이 남북한이 모두 ‘선조치 후보고’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남북한이 상호 불신하며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말 대 말’의 공방이 의도하지 않은 국지전으로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남쪽에서도 2010년 11월 28일 임진각 부근의 군부대에서 아군병사가 대구경 포의 조작훈련을 하다가 장전될 줄 모르고 격발해 포탄이 북쪽으로 날아가 군사분계선(DMZ) 부근에 떨어진 일도 있었다. 다행히 당시 군사핫라인으로 즉각 북측에 오발이었음을 통보하여 북측의 반격은 없었다. 요즘 같이 판문점 남북직통전화를 끊은 상태라면 남북한 군대가 서로 포격전을 벌이는 군사충돌이 일어났을지 모를 일이었다.

 

류 통일부 장관의 대북 메시지에서 출구전략을 찾아야

 

이처럼 극단을 치닫고 있는 한반도의 대결국면에서 조금씩 대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북한 최고사령부가 성명을 발표한 같은 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3월 5일자는 “공은 미국에 가 있다”면서 “정세를 폭발시키는 것이 전면대결전의 목적이 아니고 미국이 옳은 길을 택한다면 조선도 호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 3월 7일자는 1970년대부터 북한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제안을 여러 차례 내놨지만 미국이 이 제안을 모조리 외면했다며 비난했다. 또한 3월 16일 북한 외무성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밝혀 북·미 대화의 조건이 대북 적대시정책의 포기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북한이 거친 언사를 쓰고는 있지만, 미국이 대북정책을 전환하고 북·미 대화에 나서주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고 있다. 미국 또한 북한의 위협적인 언사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1기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3월 5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대화창구로 나와 주길 희망한다”고 밝힌 데 이어, 3월 11일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작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이 제안했던 ‘미얀마 해법’을 환기시키며 북한이 약속 준수와 국제법 존중의 뜻에서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마바 미 대통령은 3월 13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핵실험과 미사일발사를 중단하면 북한과 대화할 수 있다며 한층 낮춰진 북·미 대화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는 우라늄농축시설 동결과 남북대화 선행을 요구하던 기존의 ‘전략적 인내’ 접근방식에서 보다 유연한 태도로 변화된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과 미국 사이에 대화시동의 분위기가 감지되는 가운데,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남북대화의 재개와 관련해 중요한 발언을 하였다. 지난 3월 11일 그는 취임사에서 북한의 핵개발과 안보적 도발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겠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대화는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특히 류 통일부 장관은 7․4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 과거에 합의한 약속은 존중되고 준수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정치상황과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과 이산가족, 납북자, 국군포로 문제 등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새 정부의 자세는 전임 이명박 정부와 분명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정책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단체의 방북이나 대북 인도적 지원을 조건 없이 허용해야 할 것이다. 조만간 북한주민들은 춘궁기를 맞이해 극심한 식량난을 겪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식량지원은 말 그대로 인도주의 차원에서 조건 없이 추진하는 것이 옳다.

정부 차원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자연스럽게 남북당국자 간의 대화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공식적으로 연계하지는 않더라도 과거 관행으로 볼 때, 대북 인도적 지원을 계기로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신뢰의 분위기가 살아나면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고 경평축구경기를 부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남북당국자 간의 대화가 재개되면, 그동안 단절된 각종 각급의 대화창구를 하나둘씩 복원해 나가면서 남북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할 것이다.  특히 남북한의 우발적 군사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신뢰조치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쌍방의 합의 아래 ‘선조치 후보고’ 체계를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정전 60주년을 맞아 곧바로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올해 안에 정전상태를 마감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는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할 수 있는 기반도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평화재단 제 70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새 정부의 통일, 외교, 안보 지침서 - 남북 문제 해법을 찾는! <현안진단 2013>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지난 5년간의 대북 정책 및 대응을 발판삼아 박근혜 새 정부가 나아가야할 진취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지침을 담았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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