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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사과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 친구, 어떡하죠?

친구와 싸우고 나서 돌아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아 다시 사과를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내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때, 그럴 때 참 힘들죠. 이런 경험 많이들 있으실 겁니다. 저도 ‘나는 착한 사람이여야 한다’는 병에 걸려서 조금만 다투어도 금세 사과를 하지 않으면 제가 힘들어하는 성격입니다. 이렇게 큰 마음을 먹고 상대에게 사과하려 다가갔지만 정작 상대의 마음은 풀리지가 않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명쾌한 해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질문자 : 저는 뭔가 잘못된 게 있다 싶으면 반드시 끄집어내 밝혀야 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상대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그 점을 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지적하고 이야기하다 보니까 가까웠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멀어진 친구들과 얽힌 인연을 풀고 다시 잘 지내고 싶은데 이제와 그 친구들에게 다가가기도 어렵고, 또 제가 사과를 해도 쉽게 받아주지 않다보니 ‘네가 잘못했으니까 그런 일이 생겼던 거지’하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는 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 법륜스님 : 우선 내 생각만 고집하고 나만 옳다고 생각했던 내 모습을 참회해야 합니다. ‘제가 어리석어서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성질만 고집했습니다.’ 이렇게 참회기도를 하고, 과거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과보가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면 됩니다.

 

참회를 하는 것은 상대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 나에게 좋은 일입니다. 상대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상대는 내가 참회를 하는지 안 하는지, 내 마음이 불편한지 편안한지 알 수가 없지요. 내가 참회하면 내 상처가 풀리지 그 사람 상처가 풀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내 마음 속으로 아무리 깊이 참회를 해도 상대방 마음 속에 맺힌 상처가 있다면 나쁜 인연의 과보는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과보를 받아내야 합니다.

 

나는 지난 어리석음을 참회했고 내 마음에는 상대에 대한 미움이 없어졌다 하더라도 상대의 마음 속에 나로 인한 상처가 남아 있다면 그가 나를 미워하거나 욕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 성질대로 다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해서 남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좋았던 관계를 허물어뜨려 놓고서는, 이제와 미안하다는 사과 한 마디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기를 바라는 건 과욕입니다. 내가 이렇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으면 내 사과를 받아들여야지 왜 아직도 나를 미워하고 외면하느냐고 따지는 건 여전히 자기 성질대로 상대를 휘두르려는 고집일 뿐입니다.

 

상처를 줬다는 사실도 까맣게 모르고 미안한 마음도 없이 살다가 이제와 겨우 잘못을 깨닫고 나타나서 사과 한 마디 던져놓고는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하는데 네가 감히 내 마음을 안 받아들여?’ 이런 마음이 드는 것 아닙니까. 입으로는 잘못했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옳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래가지고는 서로에게 다시 새로운 상처만 더할 뿐입니다. 백 번 사과해도 상대가 화를 안 풀면 백한 번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그게 진짜 잘못했다는 자각이 있는 것이고 그게 진심으로 과보를 치르겠다는 참회의 자세입니다. 내가 고개를 숙일 때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더라도 ‘그때 그렇게 상처를 입었군요. 미안합니다’ 하는 마음으로 받아내면 그 사람의 상처도 언젠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내 사과를 받아들이고 과거에 맺혔던 마음을 푸는 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상대의 몫이기 때문에 사흘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건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상대의 영역입니다. 그걸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과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과보를 요리조리 피할 궁리만 하지 말고 아프게 받아들이세요. 과보가 무서운 줄을 알아야 다시는 같은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다 포용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하고 손바닥이 닳도록 기도한다고 그런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지은 과보를 절실히 참회하고 과보를 뼈저리게 느끼면 자연히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생기게 됩니다. 쉽게 용서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 나가다 보면 계속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나중에 어떻게든 피할 길이 있겠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요.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가 없구나. 부처님 말씀이 어떻게 이렇게도 맞을까?’하고 과보를 받으면서 불법에 대한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계율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지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원칙이 잡힙니다. 그래서 과보를 받으면서 수행이 깊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 변화를 일구어나가시기 바랍니다.

 

- 질문자 : 감사합니다.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질문자가 자리에 앉습니다. 청중들도 활짝 웃음을 보입니다. 사과를 받아들이고 맺혔던 마음을 푸는 건 내가 하는 일이 아니고 상대의 몫이다. 그로 인한 과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뼈저리게 느끼면 자연히 굳은 결심이 생기게 된다... 어떻게 마음을 가지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내 사과를 상대가 받아들여야 된다는 것 역시 내 뜻대로 되어야 한다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죠. 내가 옳다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은 것이 진정한 사과인데, 끝끝내 자기를 고집했던 지난 시절 제 모습이 되돌아봐졌습니다. 참회를 하면 상대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다시한번 명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