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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산 정희가 죽은 정희를 잡았다"

대선 TV토론, 트위터 반응 살펴보니

 

박근혜, 문재인, 이정희 세 후보의 대선 TV토론이 4일 오후 8시 생중계 되었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체로 재미있게 시청했다는 평이다. 이번 토론의 주인공은 이정희 후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이슈들을 만들어냈다.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정치인으로서 과연 재기할 수 있을까 하는 평가도 많았지만, 어제 토론에서 이정희 후보는 자신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TV토론이 끝나고 트위터의 반응들이 궁금했다. 역시나 이정희 후보의 발언에 대한 반응이 가장 뜨거웠다. 이슈의 한가운데에는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날린 돌직구 발언들이 있었다. 어록들이 탄생할 정도로 트위터에서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어제 TV토론의 포토제닉이네요. 이정희 후보를 바라보는 박근혜 후보의 눈빛.(이투데이)

 

"충성혈서 써서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 누군지 알 것이다. 한국이름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집권하고 한일협정을 밀어붙인 장본인이다. 유신독재를 하고 철권을 휘둘렀다. 뿌리는 숨길 수 없다. 박근혜-새누리당이 한미FTA를 날치기해서 경제주권을 팔아넘겼다. 대대로 나라주권 팔아먹는 사람들이 (오히려) 애국가를 부를 자격이 없다."

 

이정희 후보가 박근혜 후보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은 듣고 많은 네티즌들이 검색창에 '다카키  마사오'를 검색한 것이다. 순식간에 포털에서 검색어 1, 2위를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카키 마사오 누구야? 이러면서 찾아보는 아이들. 티비 토론이 역사공부도 시켜주네." - @coachyang

 

이런 질문들이 트위터에서 계속 올라왔다. 이정희 후보의 공격은 계속된다.

 

"박 후보는 유신정권 당시 장물로 월급 받고 살아온 분이라 (권력형 비리 근절대책을) 믿을 수 없다. 전두환 대통령이 준 6억 원을 스스로 받았다고 하지 않았나."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6억원을 받지 않았냐는 질문에 박 후보는 크게 당황한 듯 경황 없이 대답했다. 이 장면은 중요한 포인트로 많이 거론되었다. 박 후보의 대답은 이렇다.

 

"당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렇게 흉탄에 돌아가시고 나서 어린 동생들과 살 길이 막막한 상황이었다. 아무 걱정 문제없으니 배려 차원에서 해주겠다고 하는데 경황없는 상황에서 받았다. 저는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다. 나중에 사회에 다 환원할 것이다. 정수장학회나 영남대 문제도 보도된 바 있는데 이정희 후보가 작정하고 네거티브를 어떻게 든지 해서 박근혜란 사람을 내려 앉혀야겠다고 생각하고 나오신 것 같네요."

 

이 발언이 나가자 곧바로 "박근혜, 전두환으로부터 6억원… 경황이 없어서 받았다" 라는 식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트위터 민심도 크게 요동쳤다.

 

"박근혜의 무능함이 포인트. 전두환 6억 얘기가 나왔을 때, '살길이 막막해서 받았다','자식이 없으니 환원하겠다'고 대처한 것. 전자는 남의 도움 없이 자립 못하는 무능력자요, 후자는 그 돈이 상속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무개념의 소유자임을 셀프인증한 것." - @junglim0415

 

"살포시 다가가 6억을 주는 아는 오빠가 있습니까?" - @newspresso

 

"박근혜 후보는 면전에서 직구 날린 사람을 난생 처음 봤을 지도..." - @md_kdh

 

박 후보의 발언을 비꼬는 내용의 글들이다. 이런 비판은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박근혜 후보의 면전에서 직격탄을 날린다.

 

"이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박근혜 후보 떨어뜨리기 위한 겁니다. 저는 박근혜 후보 반드시 떨어뜨릴 겁니다. 진보적인 정권교체 할 겁니다."

 

이 말을 듣고 박근혜 후보는 당황한 기력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대해 몇몇 파워트위터리안들은 이정희 후보의 발언에 대해 속시원하지만 자중의 필요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토론 자체만 보면 이정희 후보가 만점에 가까운 실력을 보여줬죠. 다만, 불필요하게 공격적인 부분("당신 떨어뜨리러 나왔다")이 감점 요인인데, 본인은 거기에 개의치 않는 듯." -
@unheim

 

진중권 교수의 지적이다. 이정희 후보의 맹공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속시원해 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게다가 오늘 아침 각종 뉴스와 보수 일간지에는 이런 이정희 후보의 활약상을 생략한 보도가 많았다. 여기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MBC 아침 뉴스에서 이정희 후보는 언급조차 안 됐다. 아나운서는 박근혜 문재인 간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졌다고 멘트. 저기요 토론보셨어요?" - @Doooown

 

이에 더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부류도 생겨났다. 한편으로 중앙선관위가 정한 TV토론 방식에 문제가 많았음을 주장하는 의견도 많았다.

 

"첫 대선TV토론...사회자 개입이 너무 잦고 길다. 30분 진행된 상황에서 사회자 혼자 떠든 시간이 무려 5분이다. 토론이 복잡하다보니 방식 설명 장황하고 개입 잦다. 미국은 90여분 내내 사회자 개입 시간이 5분이었다." - @nodolbal

 

"토론방식이 답변에 대한 재질문이 안되니 상대방 답변의 내용을 따져 물을 수가 없다. 박근혜를 위한 방식이라고 야권 지지자들이 볼멘 소리를 하던 것을 제대로 역이용해 이정희는 박근혜가 뭐라 질문하든 자기 할 말만 했다." - @ihanall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김진애 민주통합당 전 의원이다.

 

"TV토론 룰은 '후보 주도권토론'으로 바꿔야해요. 공통질문 같은 건 없애고, 모두연설, 마무리 연설만 두고. 질문-답변-반론-재반론에 아젠다 설정-문제해결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사회자개입 없앱시다!" - @jk_space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에서 토론 룰이 만들어졌다고 야당 쪽에서 항의도 있었는데, 이정희 후보는 오히려 재반론이 없는 점을 십분 활용하여 자기 할 말만 하는 방식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펀치를 가했다.

 

일부 트위터리안들은 이에 대해 "이러다가 두 번째 TV토론부터 이정희 후보가 안 나오는 것 아닌가"라며 걱정스런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박 후보 쪽에서 강력히 항의할 것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박 후보가 양자 토론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삼자 토론을 해보고 크게 데이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의견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 토론을 위해 몇 가지 제언을 남기는 파워트위터리안도 있었다.

 

박대용 기자(@biguse)는 박 후보에 대해 "이 후보의 공격을 받고 표정이 싸늘해지고 발음이 꼬이는 등의 모습이 자주 비춰졌다. 이 부분은 다음 토론에서 꼭 극복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고 제안했고, 이 후보에 대해선 "말의 속도를 좀 줄이고 '당신 떨어뜨리려고 나왔다' 같은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는 것이 좋을 듯"이라고 제안했다. 또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는 "경상도 발음이 당장 고칠 수는 없겠지만, 비경상도권 국민들은 알아듣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단 측면에서 좀 더 발음 교정에 노력하면 좋겠다 싶다"고 했다. 

 

전반적으로는 "문 후보의 존재감이 너무 없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야당 후보로서 예의는 지키되 어느 정도의 공격성은 보여주는 게 필요하지 않았나라는 의견이다. 또, TV토론을 아주 쉽고 간명하게 패러디 형식으로 요약한 글들이 트위터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촌철살인의 TV토론 관전평들이다. 

 

이정희 : 나는 잃을 게 없다
박근혜 : 나는 읽을 게 없다
문재인: 나는 낄 데가 없다 ㅋㅋㅋ  -@ballboxx

 

이정희 : 나는 혼냈다.
박근혜 : 나는 혼났다.
문재인 : 나는 혼자였다. - @hopeplanner

 

박근혜 "솔직히 말해봐, 너네 오누이지?"
문재인 "박근혜 후보는 왜 네거티브 같은 걸 하고 그러심?"
이정희 "오빠 가만 있어봐. 쟤는 내가 잡아" - @dogsul

 

이정희-최고의 토론자(이번엔 뭘로 골려주나),
박근혜-최고의 낭독자(이번엔 뭘 읽어야 하나),
문재인-최고의 관람자(난 언제 끼어들어야 하나). - @dogsul

 

토론 관전평들을 보며 웃다가 뒤집어질 뻔 했다는 트위터리안도 있었다. 반짝이는 재치들이 느껴졌다. 토론이 끝나고 친구가 자기 아버지의 TV토론 반응 변화라며 문자를 보내왔다. 이 문자를 보고 또 크게 웃었다.

 

- 초반 : 빨갱이 민주통합당이 감히 박정희 대통령 딸을 공격하고 욕하다니...나쁜!
- 중반 : 전두환한테 받은 돈은 환원해야지.. 박근혜랑 문재인은 참 말 못하네...쯧
- 후반 : 이정희가 서울대 나와서 그런가 제일 똑똑하긴하네... 누구 뽑아야하나...

 

참고로 친구 아버지의 연세는 72세다. 여러모로 흥미로운 토론회였으며 이정희의 압승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케 해주었다.

 

문재인 캠프에서는 이번 주에 '안철수 로또'를 기대했다가 생각보다 당첨금이 적어 실망했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이정희 로또'를 맞은 것 같다. 문 캠프로서는 선거의 역동성이 살아난 지금이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오늘 하루는 이정희의 날이 될 것 같다.

 

첫 번째 대선TV토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산 정희가 죽은 정희를 잡았다"라고 갈음하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인 듯 싶다. 고재열 시사IN 기자(@dogsul)의 트윗 관전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