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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선거정국에 묻혀 외교가 보이지 않는다

내달 중국은 새 지도부를 뽑는다. 11월에는 미국이, 12월에는 한국이 대선을 치른다. 그 사이에 일본도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거를 통해 새 내각을 구성할 예정이다.

 

중국은 차세대 지도부를 사실상 내정해 놓았지만 한·미·일 3국의 정치인들은 각기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북아 역내(域內)의 중요 외교현안이 뒷전으로 밀리는가 하면 득표를 의식해서 역내 협력관계를 고의로 저해하는 행태도 벌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선거정국에 실종된 외교

 

북핵문제는 동북아 외교현안 가운데도 우선순위가 높은 공통의 과제이다. 그런데 핵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은 대선정국에 발이 묶여 북한의 핵능력이 제고되는 상황에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6자회담의 합의를 깨고 핵 불능화 조치를 중단한 지 4년, 그 사이에 북한은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하여 핵물질을 늘리고 추가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이제 경수로 원자로의 완공을 서두르는 상황이다.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관계(미래)는 역사문제(과거)와 영토문제(현재)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지지율 만회를 위해 고의로 주변국들과 외교마찰을 일으켜 역내 협력관계 발전에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이나 남북관계를 풀려는 시도는 거의 포기한 듯하고, 대통령의 독도 방문도 일본의 우경화 놀음에 이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선거정국에 묻혀 한·미·일 세 나라의 동북아 외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동북아시아의 중요한 전환기, 선국 정국이지만 제발 외교에도 관심 가져주길...! ㅋ

 

북방 3각의 리셋(ReSet)

 

반면 일찌감치 새 지도부 구성을 마친 북한과 러시아, 그리고 사실상 내달 지도부 선거의 요식행위만 남은 중국의 움직임은 보다 전략적이다.

 

동북아 지역이 전환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각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동시적으로 교체된다고 하는 뜻만이 아니다.

 

향후 20년의 기간 안에 세계 속의 동북아 위상은 물론 역내의 구조적 질서도 크게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의 하청공장으로 간주되기도 했던 중국이 세계 최대시장이 되고 러시아가 역내에 자기 자리를 다시 찾으려 하고 있다.

 

20년 전 공산주의 경제가 해체되거나 국가 자체가 붕괴되었던 이들이 이렇게 빨리 체력을 회복하고 동북아의 지형을 바꾸는 주요 인자가 되리라고 예상했었던가?

 

개방 초기 중국은 도광양회(韜光養晦)로 몸을 사렸지만 현재 4세대 지도부는 화평굴기(和平屈起), 유소작위(有所作爲),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앞세우며 자신감을 쌓아 나왔고, 이제 서서히 패권주의의 조짐도 드러내고 있다. 이어서 5세대 지도부는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3번째 임기를 시작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극동개발부(極東開發部)를 신설하고 에너지와 자원을 무기로 동북아 역내 위상 강화에 주력하면서 새로운 질서 형성에 뛰어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의 주제도 에너지와 자원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의 미래 국가비전을 북한과 연계한 프로그램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중국은 창치투(長吉圖)개발계획과 북한의 나진선봉 특구의 개발을 연계하여 동해출구(東海出口)를 확보하려 하고 있고, 러시아는 가스관, 송전망, 철도망 등을 한반도와 연결하는 소위 남·북·러 3자 간 3대 경협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탈냉전 이후의 유리한 환경에서 평화통일의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구체적 프로그램을 하나씩 진전시켰어야 할 우리가 이런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을 구경만 하고 있는 현실은 너무 딱하고 답답하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 20년 후 우리 주변환경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새로운 동북아질서의 큰 그림을 갖고 북한을 끌어들이자

 

우리는 지난 수년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한 논쟁으로 진보와 보수가 갈리고 그것이 선거에 투영되어 남남갈등으로 국력을 낭비해왔다.

 

북핵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며 남북관계 개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북한의 자발적인 ‘(핵)포기’와 ’(천안함)사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우리는 북한의 뒷문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환경 변화를 놓치고 말았다. 미국의 힘을 믿고 미국과 보조 맞추는 것을 능사로 알고 북방 3국의 움직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온 때문이다.

 

당장 시작해야 할 동북아외교의 과제는 북핵문제이다. 최근 수년간 6자회담이 공전되자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관계 발전에 적극 나서면서 북한 핵폐기를 문제해결의 출구로 보는 입장을 확고히 정립한 것 같다. 이것은 이들 국가의 국익과 미래비전이 당면하게 북한과의 관계발전을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푸틴 대통령도 여전히 ‘북한 핵폐기’를 정책목표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내는 바꿀 수 있어도 이웃은 바꿀 수 없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면서 부채 110억 달러 가운데 90% 탕감, 북·러 정상회담 제안 등을 통해 대북관계 개선에 나서는 현실적 입장을 밝혔다.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는 미국이나 대북 채널이 막힌 한국 정부의 불편한 시선 속에서 대북 접촉을 시도하는 일본도 ‘비핵화’보다는 ‘비확산’에 무게중심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5년 전의 ‘선 비핵화’ 입장만을 그대로 고수하다간 외교적으로 고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지난 5년 내내 평양만 노려보고 있었으며 동북아 지각판의 변동에 둔감했다. 그새 북한은 김정은체제의 가동을 통해 ‘인민생활 개선’을 중심과제로 삼고 대내외정책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나름대로 동북아 세력구도의 변화를 읽고 이에 부응해 나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우리가 동북아공동체를 형성하고 통일한국을 이루어 평화와 번영을 누리는 공고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지금 중요한 역사적 변환기에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 동서남북 사방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면밀히 평가해야 하며,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비전과 국가전략이 나와야 한다.

 

어차피 북한을 시야에 넣지 않고는 동북아공동체를 말할 수 없다. 북한에 대한 정책을 완전히 새롭게 짜고 가다듬어야 하는 이유다. 이제 임기 말이니 다음 정부에 미루자는 태도는 역사의식의 부재로 후대에 비판받을 것이다. 덧붙여 국익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판단에 의존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정치적 실점에 보탬을 가져온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라는 점을 강조해두고자 한다.

 

북한과 주변국의 움직임을 바로 보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 질서재편 과정을 감안하면서 이제라도 동북아 새 질서와 한국의 역할이라는 큰 그림을 갖고 그 틀 속에 북한을 끌어들이려는 외교적 노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57호에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