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반도평화

남북관계, 직무유기는 이제 그만 하시죠

지금 남북 간에는 ‘막말의 행진’이 그칠 줄 모르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일시 한반도의 긴장상황이 조성되기는 했지만, 금년 2월 23~24일 북·미 고위급 접촉이 이루어지고 마침내 2·29합의가 발표되면서 상황은 크게 호전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3월 초 북한이 ‘광명성 3호’를 발사한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은 다시 급반전되었습니다.

 

그칠 줄 모르는 자해적 남북관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만류에도 결국 북한은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가 열리는 날 로켓을 발사하였습니다. 북한의 로켓 발사는 실패로 끝났지만, 실패 여부는 중요한 게 아니였습니다. 문제는 신생 김정은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국제사회의 규칙을 어기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유엔은 발사 당일 유엔안보리 회의를 소집하여 4월 16일 북한의 행동을 규탄하는 안보리 의장성명을 채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에 따른 파장은 남북관계에서 증폭되었습니다. 북한은 지난 4월 18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우리 정부가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에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며 “서울의 모든 것을 날려 보낼 수 있다”고 도발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이에 앞서 우리 쪽에서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북한 미사일 요격 퍼포먼스를 벌이고 보수 성향의 대학생들이 북한 3대 세습을 규탄하는 플래시몹을 가진 바 있습니다. 또한 4월 16일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연설에서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비용만으로도 6년치 식량 부족분을 살 수 있다며 북한을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북한의 강경성명이 나오자, 우리 정부도 이에 뒤질세라 막말로 맞받아쳤습니다. 국방부는 4월 19일 첨단미사일을 공개하면서 “수도권 이남에서 발사하더라도 평양 노동당사에 있는 김정은 노동당 1비서의 집무실 창문도 겨냥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북한을 자극했습니다. 이튿날 이명박 대통령도 통일교육원 특강에서 중국의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동참을 ‘통중봉북(通中封北)’이라 평가하며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이 농지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

 

이에 대해 4월 2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반도에서 무슨 일이 터지는 경우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이명박 역도에게 있다는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고 천명하고, 그 다음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특별작전행동소조의 명의로 “역적패당의 분별없는 도전을 짓부숴버리기 위한 혁명 무력의 특별행동이 곧 개시”된다며 구체적으로 보복행동을 천명했습니다.

 

그래도 긴장완화의 출구는 보인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남북관계와는 달리, 그나마 한반도 주변정세는 점차 안정화의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4월 20일부터 김영일 북한노동당 국제비서가 중국을 방문하여 고위급 인사들과 회담을 가진 데 이어 4월 23일에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면담했습니다. 중국의 유엔안보리 의장성명 동참에 대한 무마와 대북 식량지원 및 추가도발 자제요청 등 양국 현안에 관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함께, 북한의 ‘광명성3호’ 발사로 고조된 한반도의 긴장상황은 미국·중국 등 주변 군사대국들의 세력과시를 거쳐 점차 파고가 잦아들고 있습니다. 4월 26일~5월 3일 중·러 연합해상훈련이 산둥반도 주변해역에서 실시되었으며, 특히 마지막 날인 5월 3일에는 실탄사격훈련이 있었습니다. 또한 5월 7일~18일 12일 동안 한국공군작전사와 미 제7공군이 참가하는 역대 최대의 한미연합공군훈련인 ‘맥스 썬더(Max Thunder)’가 실시되었습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양국이 한 차례씩 자국의 군사적 개입능력을 과시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세력균형을 확인한 가운데, 점차 쌍무대화를 통해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방안들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5월 3~4일 베이징에서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US-China S&ED)에서 북한문제에 대한 협의 이후 북한의 호전적인 태도가 다소 누그러진 듯이 보입니다.

5월 8일부터는 리자오싱(李肇星) 전 외교부장이 이끄는 중국국제우호연락회 친선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면담하였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이후 2월 23~24일 푸잉(傅瑩) 외교부 부부장이 식량지원과 한반도평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문한 지 석 달 만입니다. 이번 리 전 외교부장의 방문은 미·중 전략 및 경제대화의 결과를 북한 측에 설명하고 양해를 얻기 위한 자리로 보입니다.

 

결국, 5월 2일 유엔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가 북한단체 3곳을 제재대상으로 추가 지정하는 것을 끝으로 ‘광명성 3호’ 발사에 따른 제재논의는 마무리됐습니다. 북한도 5월 6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평화적 우주개발과 핵동력공업발전을 추진하면서 강성국가를 보란 듯이 건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기본적으로 유엔안보리 의장성명이 설정한 레드라인(3차 핵실험, 추가 발사)을 깨는 것은 자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닌가 보입니다. 현재까지는 미국과 북한이 2·29합의가 완전히 파기되었다고 서로에게 공식적으로 통보한 바 없고, 중국도 이 합의를 되살리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공식출범과 ‘광명성 3호’ 발사로 한반도를 한바탕 긴장으로 몰아넣었던 사태는 5월 14일에 열린 제5차 한·중·일 정상회의와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문제에 관한 의견교환을 통해 마무리 수순을 밟아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남북 당사자 간에 대결과 긴장 국면을 전환하고 관계를 개선하는 일만이 남아 있습니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이 현 정부의 업적이 될 수 없다!

 

김정은 체제가 공식출범한 데 이어, 우리도 제19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본격적으로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운동과정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제 집권 말기에 들어선 현 정부로서는 어떻게 하면 대선과정을 평화적으로, 그리고 공정하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됩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차기 정부를 위해 안정된 남북관계를 물려주는 일입니다. 안정된 남북관계야말로 국민의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안정된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해서는 우리 정부의 조치뿐만 아니라 상대인 북한이 군사도발을 자제하는 등 태도변화도 중요합니다. 북한의 추가도발이 자제된다는 전제하에 남은 임기 동안 현 정부는 차기 정부를 위해 최소한 다음 두 가지는 해놓고 가야 합니다.

 

첫째는 5·24조치를 해제하여 남북관계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남북 간에 대화채널을 실질적으로 복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사 북한에 1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보여준 현 정부의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현 정부는 고집스럽게 기존의 대북 강경압박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대북 강경자세는 김정은 정권의 취약성에 따른 북한체제의 조기붕괴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현 정부 내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조차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루어낸 업적으로 보는 인식이 있습니다.

 

혹시 현 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견지하는 것이 현 정부가 내걸었던 ‘비핵·개방·3000 구상’ 가운데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해 실패로 끝난 상태에서, 그나마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견지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한 것인가? 정말로 현 정부가 이러한 인식 아래 이른바 ‘원칙’을 훼손시키기보다는 이를 견지함으로써 현 정부의 대북정책 업적으로 삼으려고 한다면 이는 착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책임을 망각하는 처사입니다. 사실 현 정부가 말하는 ‘원칙’은 원칙도 아닙니다. 지켜야 할 원칙도 없고 무작위, 무관심을 ‘원칙’의 이름으로 가둔 데 불과합니다.

 

현 정부가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차원에서 금년 12월 대통령선거 이전까지 남북관계 정상화의 토대를 마련해 놓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를 역행시키고 평화통일의 도정을 헝클어 놓았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차기 정부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12월 19일 대선에서 승리하게 될 차기 집권세력은 우선 현 정부의 정책을 뒤집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정립하고 그 실효성을 검증해야 하며, 대북라인을 새롭게 구축하고 북측에 일관된 신호를 보내 신뢰를 쌓아야 하며, 그 후 공식적인 대화단계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 과정이 1년 이상 걸립니다. 설상가상으로 북측이 신정부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도발이라도 자행하는 경우에는 장기간 남북관계가 표류할 수도 있습니다.

 

남북관계의 평화적 발전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정부의 책무

 

현 정부가 남북관계의 복원을 위해 남은 임기 동안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역사적인 평가나 정치적인 책임을 넘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가 파탄된 채로 차기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면, 차기 정부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라인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은 제13조에서 “정부는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1항)하고, “통일부장관은 관계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를 거쳐 기본계획에 따른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4항)하며, “기본계획 및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한 경우 통일부장관은 이를 국회에 보고”(5항)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은 2005년 12월 8일 국회본회의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하였으며,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2006년 7월부터 효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에 따라 5개년 기본계획이 수립되어, 2007년 11월 1차로 국회에 보고되고 그해 12월에 관보에 게재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 남북관계 기본계획을 수정한다며 기본계획의 이행은 물론이고 연도별 시행계획의 제출을 차일피일 미루어왔습니다. 그러다가 천안함 사태가 발생하자 이를 핑계로 결국은 지금까지 연도별 시행계획조차 한 번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에 제출하기로 되어 있는 제2차 기본계획 및 연도별 시행계획을 아직까지도 수립해 놓고 있지 않습니다. 이는 명백히 정부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직무유기인 것입니다.

 

지난 5월 30일 제19대 국회가 정식으로 개원했습니다. 정부가 헌법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지 않으려면 새로 구성된 제19대 정기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제2차 기본계획 및 연도별 시행계획의 수립에 착수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남북관계의 평화적 발전을 위한 책무를 다해주어야 합니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에 게재된 글입니다.

 

평화재단에서는 오늘 19일(화) 오후2시 한국언론재단 프레스센터20층 국제회의장에서 '국가 비전과 통합적 통일정책' 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 정책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많이들 오셔서 함께 하시면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 2012년 평화재단 심포지엄 바로가기 : [클릭]

 

아래의 view 추천을 눌러주세요.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