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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김여진이 노희경에게 묻다, 연애 성공하는 법

최근 소셜테이너로 불리우며 다양한 사회참여를 통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김여진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드라마작가 노희경과 ‘사랑’에 대해 진솔한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평화재단 열린 아카데미에서 열린 두 분의 솔직 담백한 토크 현장을 이야기로 담아봤습니다. 짧게 줄이면, “사랑을 주제로 김여진이 묻고, 노희경이 답하다.” 이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김여진 : 제가 감히 우리나라 ‘최고의 사랑 이야기꾼’, ‘사랑의 대가’라고 부르고 싶은 노희경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겠습니다.

연애, 알면서도 속는 것?

김여진 : 사랑했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서 지금 연애하고 있는 분들에게 성공하는 연애 방법을 알려주세요. 특히 ‘나는 왜 연애만 하면 실패할까’, ‘나는 왜 연애도 한 번 못해볼까’, ‘나는 왜 사랑하려다 말까’, 이런 분들에게 사랑과 연애에 대한 나만의 노하우랄까 들려주세요.

노희경 : 한창 연애할 때는 특별한 방법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뜨거운 거지. 보고 싶으면 찾아가고 상대를 괴롭히겠다고 작정하면 반드시 성공하고……. 뭐, 이런 거였죠. 그런데 지금 드는 생각은 뭐랄까, 그때 짰던 이런저런 작전들이 다 실패했거든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잘못된 방법을 사용했구나 싶어요. 지금 다시 내게 사랑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해(理解)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내 마음을 이해하고 상대의 맘을 이해하려 애쓰는 거요. 사랑에 대해 진지해지고 끊임없이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정말 행복하려고 연애를 하는가? 다만 뜨거운 걸 원하는 건 아닌가? 행복보다는 소유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건 아닌가? 그런 걸 스스로에게 묻고 상대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어요. 가끔 우리는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거든요.

김여진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노희경 : 사실 20대에 연애할 때는 단지 자극이 중요하죠. 그건 행복과 거리가 멀어요. 내가 얼마나 애끓는지가 중심인 거죠. 상대를 자극하고 내가 자극받고 하는 거. 거기에 무슨 이해가 있고 거기에 무슨 평화가 있겠어요. 솔직히 연애하면서 싸우는 남녀를 보면 부럽잖아요.

김여진 : 나도 저래봤으면 하는…….

노희경 : 그렇죠. 밤에 남자가 여자 때문에 막 뛰어가잖아요. 그게 부럽잖아요. 그런데 거기에 무슨 평화가 있겠어요. 어떻게 하면 오늘 저놈 속을 뒤집어서 나한테 뛰어오게 할까, 내가 어떻게 하면 그 남자한테 멋있게 보일까를 생각하죠. 알다시피 우리가 연애할 때 연기를 배우잖아요. 다 아시면서……. 그런데 지금은 ‘아, 그런 것들이 내가 진정성이 없는 거였구나. 내가 걔를 행복하게 해주거나 나를 행복하게 하려고 사랑했던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연애라는 게 어떻게 해서든 서로를 자극하는 거잖아요. 요즘 드라마를 봐도 방법이 그래요. 여자가 남자를 화나게 해요. 그래서 남자가 화가 나서 술을 한잔 먹고 그걸 풀려고 여자한테 가서 따지는 거예요. “너 왜 그랬냐?” 그러면서 싸워요. 여자가 말하죠.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 “어, 그래?” 그러다 보면 서로 오해를 풀고 키스하면서 잠자리까지 가는 게 드라마의 기본 정석이죠.


우리가 연애를 할 때는 자신이 그러는 걸 몰라요. 내가 오늘 그 사람을 유도해서 어떡하든 잠자리로 가게 하려고 한다는 걸 자신이 모르는 거죠. 그게 테크닉인 줄도 몰라요. 사십이 넘어도 모르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계속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요. 쉰 살이 돼도 몰라요. 이제 나는 안 거예요. 아, 이게 그런 거구나. 그래서 그만하자, 힘들다, 체력도 안 되고. 이제는 걔가 짜증내면 그냥 화가 나요. 그만했으면 좋겠고 지치는 거죠.

우리는 행복해지려고 사랑을 한다

김여진 : 그러면 지금도 이 유치찬란한 사랑을 꿈꾸고 또 오늘 밤 어떻게 하면 상대의 속을 긁을까 머리 굴리고 계신 많은 청춘남녀에게 ‘사랑, 이렇게 해라.’ 이런 노하우를 좀 알려주세요.

노희경 : 저는 연애를 한 서른 초중반까지는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미친 듯이. 그때는 노하우가 없어요. 그냥 오늘 긁고 싶으면 긁으면 돼요. 그렇잖아요. 이때는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 같아요.

다만 우리가 사랑하고 섹스를 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싶어요. 지금 내가 하는 게 정말 사랑인가, 아니면 얘랑 자기 위해선가, 질문해보는 거죠. 아니다. 난 얘랑 안 자도 좋다, 자지 않더라도 별 상관이 없겠다, 얘가 날 자극하지 않아도 된다, 이 사람의 존경을 얻고 싶다, 그렇다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존경이 있는 거죠. 많은 질문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근데 요즘은 자극하고, 자극받고 이러는 게 모델이 돼버렸어요. 진짜 저 밑바닥까지 가는 그런 자극이 사랑인지, 아니면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사랑인지 알잖아요. 우리가 사랑을 모르지 않거든요. 성경에 나오는 좋은 말들, ‘사랑은 온유하며 교만하지 않으며’ 이런 말들을 우리가 다 알잖아요. 그럼에도 그런 것들을 우리는 지루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왜? 우리 몸속의 자극이 사랑이 됐으니까. 섹스와 사랑을 혼동한단 말이에요. 자극과 열정을 혼동하는 거죠. 자극이라는 건…… 이게 근지럽잖아요, 긁으면 돼요. 그럼 가라앉아요. 근지러운 자극을 긁어주는 건 아주 쉽단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그런 것에 길들여져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사랑이라고 세뇌가 되어 있단 말이에요. 가령 이 사람이랑 자고 싶으면 어떻게 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요. 그러고는 잤느냐, 안 잤느냐가 사랑하느냐, 안 하냐의 척도가 되잖아요. 그건 구분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예요.

진짜 사랑에 대해서 논의할 거면 우리가 밤을 새고 해도 재미있어요. 정말 내가 그 사람한테 어떤 때 위로받느냐. 난 이렇게 위로받고 싶다. 난 널 자극하고 그렇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가 외롭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이런 진지한 얘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할 수 없게 만들죠. 습관이 잘못 들어서……

상처를 치유하는 최고의 방법

김여진 : 작가님이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방법은 뭔가요?

노희경 : 제일 좋은 방법은 그걸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요즘엔 너무 상처를 받아요. 사실 드라마들이 잘못이에요. 왜 상처 있는 남자 있잖아요, 시크한 남자. ‘저 남자는 어떤 상처가 있어? 엄마가 재가했어. 한 남자가 술을 먹고 어떤 여자를 함부로 해, 왜 그래? 여자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나도 드라마 쓸 때 그렇게 해서 쓰거든요. 캐릭터를 그렇게 잡아요. 근데 그런 것들이 멋있게 보인다는 거예요. 

사실 우리 엄마는 부모님이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정말 가난하게 살았어요. 결혼 후에는 남편이 허구한 날 바람을 피웠죠. 열여섯 살에 시집오게 된 것도 엄마의 언니가 자기 시집 빨리 가려고 동생을 보리 두 말에 판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에요. 이 정도면 정말 인생이 상처투성이 아니에요? 근데 우리 엄마는 뭐냐면 “그땐 다 그랬어.” 이러셨어요. 그걸 상처로 여기지 않은 거예요.

결국 자기 자신이 그걸 상처로 생각하느냐 안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아닐까요? 만일 작가 지망생이라면 그런 걸 작품에 써먹으면 되죠. 눈을 똑똑히 뜨고 상처를 직시하면서 다 써먹으면 되잖아요. 어머니라면 그 상처를 똑똑히 기억했다가 자식들한테 지혜를 주면 되잖아요.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상처라고 생각 안 하는 거예요. ‘아, 이거 경험이다.’ 생각하는 거죠. 가령 누가 나한테 지분댔어요. 몸을 만졌어요. 그것도 경험이죠. ‘으슥한 데 가면 안 되는구나. 내가 술 먹을 땐 조심해야 되겠구나.’ 거기서 지혜가 생기죠.

김여진 : 젊은 친구들에게 사랑에 대해 요것만은 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마지막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노희경 :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걸 좀 믿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치졸해도 돼요. 울어도 되고. 정말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이런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세상에 온 목적이 다 있어요. 은하에서 왔든지 외계에서 왔든지 하늘에서 뚝 떨어졌든지 아니면 부모님이 만들었든지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어요. 누구나 목적이 있는데 그걸 잘 몰라요. 그 목적이 뭔지 자신에게 좀 물어보세요. 자기한테 가장 든든한 친구가 바로 각자 자기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전 그랬어요. 글 쓸 때 거울을 보면서 “노희경, 넌 할 수 있다.”고 매일 이야기했어요. 그 누구보다 내가 나를 먼저 믿어주는 것, 또 사랑하는 사람이 잘해서 믿어주는 게 아니라 못할 때도 믿어주는 것, 그게 진짜 믿는 게 아닐까요?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 거예요. 나는 우리 엄마가 아니었다면, 우리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내가 우리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는 학교에서 정학당한 아이, 사고치는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로 그냥 끝날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가 넌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그랬고, 그런 것들이 정말 나를 여기까지 키운 거예요. 나는 원래 그럴 애는 아니었는데, 남들이 보면 싹수가 노란 애였거든요. 공부를 잘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학교에서 정학도 많이 맞아서 빨간 줄이 수두룩해요. 그런데 그때도 내가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될까, 이런 질문들을 나한테 했어요. 엄마는 그게 과정이라고 여겼어요. 끊임없이 학교에 불려갔지요. 선생님이 엄마한테 “얘가 말이에요, 학교에서 불을 피우고요, 학교를 전복시키려고 했어요.”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어요. 내가 성냥 하나 갖고 있었다고 말이에요. 담배도 안 피웠거든요. 그때 엄마가 “너 학교에 불 지르려고 성냥 가져갔어?” 하고 물었어요. 아니라고 했죠. 엄마가 “네가 아니라면 믿어야지, 별일도 아닌데.” 그랬어요. 하지만 학교에서는 끝내 정학을 맞았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런 믿음을 주는 게 사랑이 아닐까요. 남자가 “나 의사가 못 돼서 미안해. 난 능력이 없어” 이럴 때 “의사가 못 되면 어때. 돈 버는 의사보다 생명 구하는 NGO가 훨씬 낫지 않아요?” 이렇게 독려해주는 친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오늘은 가서 그 남자를 어떻게 꼬실까가 아니라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를 한 100가지씩 적어보세요. 그럼 답이 나와요. 근데 보통 한두 가지만 적더라고요.

사랑은 정말 아름다운 거예요. 정말 아름답고, 정말 해봐야 하는 거고. 그 첫 번째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그 다음에 상대를 구할 때는 정말 크게 좀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상대가 나와 같은 사람인 사실을 잊지 말고요. 내가 요즘에 많이 써주는 말이 있어요. ‘그도 나만큼 외로울 뿐!’ 이란 말 많이 쓰거든요. ‘그도 나만큼 지쳤을 뿐!’ ‘그도 나만큼 지루할 뿐!’ 사는 게 그와 내가 별다르지 않다 생각하고 이렇게 진지한 논의를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토크가 끝나니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춘남녀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대단합니다. 사랑에 대해 적나라하게 콕콕 찝어주셨기에 뜨끔하기도 했고, 그만큼 솔직했기에 제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랑’ 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하지만, 결국 잠자리로 유도해서 자극을 얻으려는 노력에 불과했다. 사랑과 섹스를 좀 구분했으면 좋겠다... 저는 이 말씀에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꼭 제 솔직한 심정을 들킨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 물었더니, “상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치유이다” 하시는데 뒤통수를 한 대 꽝 맞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늘 내 인생은 상처가 많으니 불행하다고 여겨 왔는데, 어떤 경험도 유리하게 받아들여 인생의 자양분으로 전환시킬 수가 있구나. 그렇게 자기를 사랑하고 상대도 믿어주는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해야겠구나. 마음이 훈훈해 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글은 연인과 함께 꼭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