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법륜스님 즉문즉설

초등5학년 아이가 유서를 썼습니다

요즘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부모 말을 안 들어서 속앓이가 크다고 합니다. 저도 기억해보면 어릴 적 부모 말 안듣고 까불다고 회초리 맞았던 기억이 꽤 있는데요. 요즘 아이들은 그 도가 정말 심한 것 같습니다. 오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는 아예 유서를 써와서 부모에게 으름장을 놓는 아이도 있었다고 하네요. 집에서 아이들 키우실 때 물건 사달라고 하며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많지요. 이럴 때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다루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법륜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들어보았습니다.

▶질문 :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자기가 모아둔 목돈을 찾아서 에스보드를 당장 사야 되겠다고 고집을 부려 남편은 매를 들고 저는 야단을 쳤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제 손으로 쓴 유서를 보여주었습니다. ‘세상이 짜증난다. 엄마 아빠 때문이다. 괴롭다. 내가 사라지면 엄마 아빠는 편할 것이다.’ 이렇게 적고 인장까지 찍어놨습니다.

▶법륜스님 : 아이를 키웠는데 훗날 이 아이가 망나니가 되어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지요? 아이가 커서 성폭행을 하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잘해서 똑똑한데 부정부패를 해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이 되더라도 살아 있는 게 좋을지 그런 사람이 될 바에야 죽는 게 나을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 자식이라 하더라도 세상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혼란을 줄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나은지, 아니면 어떤 물의를 일으키더라도 내 자식이니까 그래도 살아 있는 게 좋을지 엄마가 분명하게 입장을 정해야 합니다.

부모의 입장이 분명해져야 아이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어

제가 지금 하는 말이 무척 극단적인 말 같지만, 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엄마가 이 둘 중에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고 오히려 많은 손해를 끼치고 사회를 혼란하게 할 바에야 내 자식이라 하더라도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부모의 입장이 분명해지면, 그제야 비로소 아이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습니다. 마음이 그 정도는 되어야 아이가 유서 아니라 그 어떤 걸로 협박해도 부모가 거기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아이가 유서니 뭐니 그렇게 나오는 건 부모가 입장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아이가 아무리 원해도 이게 정말 아이를 위해서나 세상을 위해서나 안 되는 일이라면 아이가 죽는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로서 아이에게 중심이 잡힙니다.

아이의 이런 행동을 용납하면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는 아이가 될 것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어떤 수단을 쓰거나 주장을 하다가 안 되면 훔치든지 그것도 안 되면 죽겠다고 협박을 해서라도 결국 얻어가는 꼴로 아이를 키우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럼 나중에 그 아이는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밖에 안 됩니다. 지금 이 아이가 하는 이런 짓을 용납하면 세상에 물의를 일으키는 아이가 될 거고. 부모가 이것을 개선하려면 아이가 죽는다는 것도 각오를 해야만 개선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선택을 해야 해요.

부모가 단호하게 한다는 것은 아이가 유서대로 행동할 수도 있다는 걸 전제로 해야 합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서 ‘차라리 그럴 바에야 죽는 게 낫다. 이게 진정으로 너를 위하는 길이다.’ 이런 마음이 되어 있는지, 아니면 그냥 아이 말대로 해줄 걸 하고 죽고 난 뒤에 후회할 마음인지 살펴보세요.

자식에게 나쁘다면 내 몸을 버려서라도 막겠다, 중간타협점은 없다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는 자기를 버려야 합니다. 자꾸 자기를 움켜쥐고 분별을 하면 안 됩니다. 아이를 위해서 내가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그런 각오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 헌신이 있어야 아이가 잘못될 때 야단을 쳐도 털끝만큼도 내가 양심에 가책이 없습니다. 이건 정말 아이를 위해서 내가 야단을 치기 때문이지요. 털끝만큼도 나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를 때리더라도 흔들림이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가르침에는 중간 타협점은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식을 키우는 엄마는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면 내 몸이라도 버려서 도와주겠다. 이게 자식에게 나쁘다면 내 몸을 버려서라도 막겠다’는 헌신과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애가 아무리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도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고. 아이를 위해서 꼭 해야 하는 거라면 내가 구걸을 해서라도 해줘야 되는 것이라고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통 부모들은 안 된다 했다가,

부모가 ‘된다’ ‘안된다’ 왔다갔다 하면 아이는 자기 고집을 더 키워나간다

된다 했다가 이러니까 어린 아이가 벌써 눈치를 채서 부모가 안 된다 해도 자기가 고집을 좀 부리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이러면 자식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자식을 위해서는 이 길을 가고야 말겠다는 각오 필요

지금 이런 상황에서는 부모가 선택을 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할 때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어떠한 희생이 오더라도 자식을 위해서는 내가 이 길을 꼭 가고야 말겠다는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초등학생이 부모에게 유서를 썼다. 어찌 보면 섬뜻한 일로 들리는 데요. 이 쯤되면 아이가 얼마나 자기 고집이 강해졌는지 짐작을 할 수 있지요. 부모가 이 고집을 꺽으려면 대단한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이가 때로는 울고 불고 난리르 치겠지요. 부모 입장에서 마음이 아플수도 있겠지만, 진정으로 아이를 바른길로 이끌어 가고자 한다면 결단을 내려야 하지요. 대부분 부모들이 여기에서 실패하면서 요즘 아이들이 굉장히 고집스럽고 자기 주장이 강해지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형제 없이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오냐 오냐 키워서 이런 경향이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청소년 사회문제나 사건들도 이런 데서 발생하는 것 같고요. 스님 말씀처럼 부모가 분명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신 한번 크게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