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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카터 방북,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되는 이유

  지미 카터 일행이 2박3일간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이 전해달라고 하는 메시지는 형식도 부적절하고 내용도 구체적인 것이 없었다. 북한에서 가져온 보따리가 없자 언론의 관심도 사라졌다. 북한이 보내줄 보따리만 찾던 언론은 정작 카터 일행이 손수 준비한 한반도 방문 메시지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방북 이전부터 한국과 미국의 당국자들은 이번 방문을  ‘카터 개인 차원의 일’ 이라며 선을 그었고,  “북한이 외부에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카터 편에 간접적으로 전하지 말고 직접 전하라” 고 언급하는 등 의사소통의 통로로 인정하려 하지 않아 큰 기대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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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지 못한 카터 일행의 한반도 방문 

  카터 일행과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이번 방북을 향후 정세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하는 에피소드로 받아들이게 했다. 카터 일행도 김 위원장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썩 좋은 기분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카터 일행의 방북에 앞서 그 의미를 축소하려던 쪽이나 방문인사들에 대한 대접에 소홀했던 쪽이나 모두 이번 방북의 성격을 오해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본다.


  카터 일행의 방북은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물론 어느 정부의 특사 자격도 아니다. 카터의 이번 방북은 예전과 달리  ‘원로들(The Elders)’  대표자격으로 진행되었다.  
  ‘원로들’ 은 2007년 넬슨 만델라 주도하에 결성된,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지도자들의 독립적 모임이다. 코피 아난, 아웅산 수치도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국적과 정파적 이익을 초월하여 지구촌 원로로서의 경륜으로 평화ㆍ반핵ㆍ인권 운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폭력과 갈등, 가난으로부터 인간 존엄성이 위협받는 지역문제에 적극 개입하며 객관적 입장에서 문제의 본질과 해법을 제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들이 관여해온 분쟁지역은 중동, 사이프러스, 수단, 짐바브웨, 미얀마 등 만성적인 국가 간, 종족 간 갈등으로 평화가 절박하게 요구되는 지역이나 가난과 폭력 때문에 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는 곳들이다. 이들이 실권을 가진 현직에 있지 않기 때문에 역할에 한계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해관계로 인한 편향성과 외교적 타협에 따르는 피상성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객관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어느 쪽의 메시지를 갖고 간 것으로 오인될까 걱정한 쪽이나, 그런 메시지가 없다고 홀대한 쪽이나 이들의 지혜와 경륜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본다.
 
지구촌 원로들의 메시지는 평화ㆍ반핵ㆍ인권

   ‘원로들’ 은 평양에 체류하면서 인터넷에 난마처럼 얽힌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한 해법을 시사하는 글을 올렸고, 이를 서울에서 기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들이 추구하는 평화ㆍ반핵ㆍ인권 운동의 목표를 지향하면서 제시한 한반도 문제 해법의 방향을 요약하면 세 가지이다.


  첫째, 평화의 문제이다. 카터는 한반도에서 휴전이 성립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남북 간에 공식적으로 평화협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비극이라고 했다. 특히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는, 다시 말해 평화가 공식적으로 회복되지 않은 상황은 북한 주민에게 큰 우려를 만들어내고 정치적 에너지와 자원을 소진시키고 있다고 언급했다.
  둘째, 반핵(비핵화)의 문제이다. 카터는 방북 중 핵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간절히 원하고 있으며, 어떤 문제도 조건 없이 논의할 용의를 반복해서 강조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원로들’ 은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안보에 대한 보장을 받지 못하면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했다.
  셋째, 인권의 문제이다. 이들은 북한의 식량난이 매우 심각하다며 대북 식량지원을 촉구했다. 인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먹을 권리이며 이는 정치군사 분야와 무관한 생존권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한국ㆍ미국이 적극적 지원 의사를 보이지 않은 점을 아쉽다고 했다. 그리고 적대적인 상대방 간에 지속적 평화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상호 대화를 장려하고 접촉과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원로들’ 의 관찰과 의견은 특별한 구속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북 식량지원으로 시작하자

  마침 카터 일행의 방북 기간에 우리 정부는 적십자회담과 백두산 토론회 개최를 연이어 북한에 제의하였다. 모처럼 우리 정부가 보인 적극성을 환영한다. 또 중국과 한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 간 회동도 있었다. 핵문제를 풀기 위한 회담 수순, 즉 남북대화를 먼저 열고 미․북대화를 개최한 후 6자회담을 재개한다는 단계적 접근 계획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 측은 다음 회담으로 가기 위한 형식적인 통과의례식 남북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부연했다. 북한 측도 진지한 태도로 동참하게 하여 또다시 이러한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인 것이기를 기대한다. 다만 남북이 상호불신의 적대관계에 있다는 현실에 입각하여 대화해야 할 것이며, 있지도 않은 신뢰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고집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원로들’  메시지의 핵심은 첫째, 한반도에  ‘적대관계’ 가  ‘상존’ 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렇기 때문에 이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근본원인이자 해법의 출발점이며 그 출발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화를 장려하고 접촉을 늘려 신뢰를 쌓아가라고 충고하고 있다. 신뢰가 있어야 대화를 한다는 태도는 외견상 원칙을 지키는 듯하지만 사실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로들’ 은 당면하게는 대북지원을 촉구하였다. 최근 유엔세계식량계획(WFP)도 현지조사를 통해 북한인구의 3분의 1이 식량부족에 처해 있다고 했고, 미국 대외원조처(USAID)도 대북지원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북한도 원조기관의 모니터링 관련 요구를 대폭 수용하겠다고 했다. 이러한 준비가 있음에도 한국정부가 대북지원을 정치군사적 조건과 연계하는 것은 원칙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전략적으로도 미숙한 태도라고 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종교지도자  ‘원로들’ 도 지난 4월 12일 대북지원의 무조건 재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국내외 원로들의 목소리가 한결같다.  

  북한의 한 외교관리가 낭독했다는 남북정상회담 용의표명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부질없는 논의에 매달려  ‘원로들’ 이 주고 간 희망의 메시지를 놓치지 말기 바란다.

* 이 글은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진단 제23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