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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콘서트

김여진, 포스터 붙이다가 배우가 된 꿈같은 사연

배우 김여진씨와 맹호부대 군장병들과의 대화마당 두 번째 이야기입니다. 어제는 군대에서의 여자친구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드렸죠? 오늘은 김여진씨의 배우로서의 삶에 대해 군장병들과 이야기 나눈 내용을 전해 드립니다.

많은 군인들이 배우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일까, 배우는 어떨 때 힘들까, 어떨 때 기쁠까, 어떤 고민들을 하고 살아갈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김여진씨의 솔직한 대답들이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주었답니다.

△ 배우 김여진. 드라마 '이산', '그들이 사는 세상' 출연
△ 사회자의 재치있는 입담에 미소짓는 김여진씨

병사들이 김여진씨에게 던질 질문입니다.

▶ 병사질문1 : 어떻게 배우의 길을 선택하셨는지? 현재의 배우라는 직업에 만족 하시는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싶으신지? 있다면 어떤 직업인지?

▶ 병사질문2 : 사극이나 정극 등 무슨 역을 맡아도 잘 소화해내시는데 어떻게 연습을 하시나요? 타고 나신 건가요?, 노력에 의한 결과인가요? 정말 연기를 잘 하시던데 비결은 무엇 무엇입니까?

▶ 병사질문3 : 지금까지 활약하신 작품들 중 가장 뿌듯하시고 기억에 남는 작품과 역할은 무엇입니까?

▶ 병사질문4 : 무명시절 방황하고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나요? 방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방황을 극복하기 위해 했었던 노력과 앞으로의 미래 계획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 김여진 : 대학4학년 겨울방학 때 제 생애 첫 연극을 보게 되었어요. “여자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연극이에요. 그 때까지 연극은 한 번도 본 적 없고, 연극 동아리 활동도 안 해 봤고, 정말 제가 연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 제가 대학4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 때,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내고, 너무 쓸쓸하고 외로울 때, 연극을 보러 갔었어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는 거였어요. 연극이 끝나고 그 자리에서 일어 날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 나가고 계속 앉아 있었어요. 그랬더니 관계자가 와서 나가시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이 연극 포스터 제가 붙여 드리면 안돼요?” 라고 했어요. 한 달 동안 포스터 붙이고 전단지 나누어주는 일을 하고, 대신 매일 연극을 보았어요. 오전에 전단지 나누어 주고 포스터 붙이고 공연시작 전에는 무대에 먼지가 가라앉도록 분무기로 물 뿌리는 일을 했어요. 매일 똑같은 공연을 두 번씩 보는 데도 매일 재미가 있었어요. 매일 연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관객들의 반응이 달라지는게 흥미로웠고, 그러면서 대사도 자연스럽게 다 외웠습니다.

내가 배우가 된 사연, 영화에도 안 나올 법한 꿈같은 스토리

한 달 쯤 지났을 적에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가 슈퍼탤런트 대회에서 대상을 받게 되면서 다음 날 안 나왔어요. 공연을 해야 되는데 대상을 받고 모든 인터뷰의 주목을 받고 여러 가지 스케줄이 생기면서, 공연 무대는 관객과의 약속이지만, 본인은 정말 까마득하게 그 사실을 잊고 공연에 안 나왔어요. 이미 관객들은 꽉 차 있었고 모든 것이 준비가 되었는데 배우가 안 나타났었어요. 그 상황에서 대표님이 제가 공연을 매일 본다는 것을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너 대사 다 외우냐?” “예” “올라가라” 그랬어요. 정말 무대에 물을 뿌리다가 10분 전에 분장실 가서 옷 갈아입고, 화장하고 무대에 섰어요. 그게 저의 첫 무대 데뷔예요. 영화에도 안 나올 법한 정말 꿈같은 스토리에요. 정말 이렇게 데뷔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는 정식 배우도 아니었고 혼자 그렇게 있다가 배우가 되었습니다.

△ 질문하는 병사

그렇게 첫 무대에 섰는데, 떨렸냐? 엄청 떨렸어요. 그런데 무대의 불이 켜지고 첫 대사를 하는 순간 떨림이 가라앉고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는 거였어요. 시키니까 한 것이지 제가 잘 할 것이란 생각도 못했고, 대사를 실수하는 것도 그건 저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했었어요. 대표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하다가 정 안되면 그때 막을 내리자. 그러고 죄송하다고 하자 그럼 된다. 그렇게 끝까지 연기를 한 거에요. 그건 연기라고도 할 수 없었어요. 그냥 서서 대사를 읽은 것인데, 옆에 계셨던 여배우 다른 분들이 저 보다 더 떨었다고 하셨어요. 제가 무슨 짓을 할까봐. 어디로 튈지 몰라서... 정말 쟁쟁한 여배우님들 김혜옥씨 서주희씨 김민정씨 지금도 정말 유명하신 연극 배우님들이 말이죠. 이런 분들이 제가 조명을 어떻게 받아야 될지 어디 서야 되는지도 모르고 그냥 서있으니까, 앉아 있으면 저를 끌어다 세워 주시는 거였어요. “너 여기 서있어!” 하시고, 나갈 때 데리고 나가시고, 이렇게 해서 첫공연을 했어요.

연기력의 비결, 한 가지를 오랜 시간 집중하면 도가 트입디다

그렇게 데뷔가 되었고 그 공연을 1년 동안 매일 2번을 했어요. 횟수로 700번 똑같은 연극을 했어요. 그러면 도가 터요. 한 가지를 그렇게 하잖아요. 그러면 중간에 정말 지루하고 지겨워 질 때가 있구요. 정말 하기 싫을 때가 있어요. 그래두 하는 거에요. 그냥 지겨우면 지겨운 데로 지루하면 지루한 데로... 아파도 뭐 열이 40도 정도 올라갔을 때도 했었어요. 그렇게 하면서 제가 한 번도 연기를 배운 적이 없는데 관객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거였어요. 이렇게 대사를 하면 웃는구나. 아! 이렇게 하면 우는 구나. 또 선배님과 같은 동료들에게서 배웠었죠. 그리고 제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고,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웃지만 웃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 이런 비판적인 입장도 생기구요, 그렇게 연기를 하게 되었어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월급 10만원에 포스터 붙이러 다닐 때

그때 저의 월급이 10만원이 안되었어요. 여전히 오전에 포스터 붙이고 오후에 공연하고, 집이 신촌이였는데 대학로까지 걸어 다녔고요. 밥은 대부분 극단에서 직접 해먹으며 해결했고요. 그런데 지금 제 20대를 돌아봤을 때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예요. 가장 아름다웠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고, 가장 행복했던... 믿겨요? 상상이 가요? 왜냐하면 그만큼 연극에 빠져 있었어요. 그 일을 하는 게 너무너무 좋았고, 배우가 다섯 명인데, 관객이 다섯 명인 날도 있었어요. 관객의 반응이 정말 뜨거운 날이 있고, 정말 싸늘한 날이 있고, 그 모든 것을 다 겪고 그렇게 무대에 섰던 그때가 가장 아름다웠어요. 왜냐하면 그냥 좋았거든요. 대가를 바라는 게 아니었거든요. 그 일을 해서 내가 뜨겠다. 이 걸 해서 내가 돈을 벌겠다. 빨리 유명해지겠다 이런 생각을 전혀 안하고 그게 그냥 너무 좋아서 했었던 그 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걸 20대의 특권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자기가 좋을 때, 몸과 마음과 시간을 다 바쳐서 한번 해볼 때, 정말 즐길 때 거기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 강연장을 가득 메운 병사들. 김여진씨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어가고 있으심.  

가장 불행했던 시절은 영화제에서 상 받고 나서 ‘인기’에 집착했을 때

그 이후에 힘들 때 있었어요. 매너리즘에 빠지고 연기자를 그만두고 싶을 때가 언제였냐면, 각종 영화제에서 상들을 받고 나서였어요. 왜냐하면 그 때부터는 욕심이 생기는 거예요. 빨리 떴으면 좋겠고, 빨리 주인공을 맡았으면 좋겠고, 좀 더 인기가 있었으면 좋겠고, 다른 배우들에게 질투도 나고. 제가 가장 질투가 났던 배우가 누구게요? 제가 김태희씨를 질투했겠어요? 제가 가장 질투했던 배우가 문소리씨였어요. 문소리씨는 그 때 연기 경력이 없었고, 저는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했었고, 제가 조금 더 스타였어요. 연기에 대해서도 ‘박하사탕’만을 놓고 봤을 때는 제가 더 칭찬을 많이 받았고, 상도 더 많이 받았어요. 그랬는데, 다음 작품인 ‘오아시스’란 영화에서 제가 캐스팅 안되고 문소리씨가 캐스팅된 거예요. 베를린 영화제 가서 상 받으면서 갑자기 우리나라 연기파 주연급 배우로 우뚝 섰었죠. 질투가 나서 죽을 뻔 했죠. (웃음) ‘축하합니다’ 말은 하면서도 속으론 울었죠. 행복하지 않았어요. 나에게 주어진 작은 역할들이 하기 싫었어요. 그 때 ‘취하선’이란 영화에 출연해서 영화제에서 상도 받았지만, 별로 기쁘지 않았어요. 계속 질투하고 있어서.

‘돈’이나 ‘인기’가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재미있죠?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월급 10만원에 포스터 붙이러 다닐 때는 분명 행복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때는 행복하지 않았어요. 잘 생각해보세요. 20대에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 라는 답은 거기에 있다고 봐요. 만약에 인기 순으로 사람이 행복하다면, 최진실씨가 돌아가시지 않았겠죠. 그죠? 그분은 우리나라 모든 연기자들의 워너비입니다. 단순한 아이돌 스타가 아니예요. 왜냐하면 젊어서의 그 인기 다 거치고 나서도 여전히 인기가 있고 여전히 모든 사람이 알아주는 배우였거든요. 결혼을 했고, 실패를 했고, 그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스타였던 사람이예요. 그게 모든 연기자들이 되고 싶어하는 위치예요. 그런 분이 돌아가셨어요. 불행했겠죠. 아무리 여러분들에게 돈이나 인기가 행복의 척도가 아니라고 말을 하더라도 믿지를 못해요. 하지만 이런 것을 옆에서 지켜보면 조금 믿겨져요.

자신이 어떤 마음을 갖는가에 따라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것

사람이 사는 건 다 똑같거든요. 자기가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서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못 먹으면, 정말 죽을 만큼 불행해질 수 있어요. 저는 이 불행을 극복했던 방식이 조금 달라요. 연기자로서만 살 때는 인기에 연연하기 때문에 극복하기가 힘들어요. 그사세 찍으며 송혜교씨랑 걸어가면 누구를 쳐다보겠어요? (송혜교씨요) 이산에서 아무리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들어도 한지민씨랑 있으면 한지민씨를 쳐다보겠지요. 속이 아플까요? 안아플까요? 속이 아파요. 많이 아파요. 이게 오래가면 병이 되요.

예를 들어 우리에게는 한예슬씨, 김태희씨, 송혜교씨 다 이쁘잖아요, 하지만 그 안에서는 누가 더 주목 받는다고 했을 때, 마음이 무너져요. 아파요. 이게 사람 마음이예요. 100억 가지고 있는 사람이 200억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고 질투하는 것이랑 크게 다르지 않아요.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동료 연기자들에게 많이 들어요. 그것 때문에 죽기도 하잖아요. 그 마음이 깊어지면 죽음에 이를 정도로 불행해 지죠.

△ 강연 마치고 장병들과 기념사진 촬영. 여진씨, 저희들을 찾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20대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 봉사와 마음공부의 시작

저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는 빈곤퇴치 봉사활동과 마음공부를 시작하면서 이런 고민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20대를 행복하게 살고 싶으신가요? 그럼 봉사활동과 마음공부에 대한 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세요.

(봉사활동과 마음공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김여진씨는 자신의 20대 시절 방황을 너무나도 솔직히 잘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신이 겪었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니 정말 이해가 쏙쏙 되더군요. 저렇게 솔직해도 괜찮나 싶은 걱정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덕분에 많은 군장병들이 20대 행복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배우의 삶이나 우리들의 삶이나 다 똑같다. 행복은 ‘돈’이나 ‘인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 속’에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크게 깨우쳐 주신 것 같습니다.

영화에도 안나올 법한 꿈같은 사연으로 연극 배우가 되었고, 그 이후 배우의 삶을 걸어가며 수많은 역경들을 헤쳐오셨고, 결국 ‘돈’과 ‘인기’가 행복의 척도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지금은 봉사활동과 마음공부를 하시며 새로운 인생을 살고 계시다는 김여진씨. 김여진씨는 강연 내내 늘 웃고 계셨습니다. 행복이 가득하셨습니다. 마음이 넉넉하셨습니다. 김여진씨의 인생을 행복으로 이끌어준 봉사활동과 마음공부에 대한 다음 이야기가 더욱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