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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남편 때문에 재산도 잃고 건강도 잃어 억울합니다

알고 지내던 분이 얼마전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 병문환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시커멓고 병색이 짙어 보여 보는 내내 마음이 안쓰러웠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강한 청년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나 싶었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사업이 실패하면서 아내와 이혼하게 되고 속앓이를 많이 했던 게 원인이었습니다. 재산을 잃은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마음의 병을 앓다보니, 건강까지 잃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은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재산은 잃어도 건강까지 잃어서는 안되는데... 오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는 남편 때문에 재산도 잃고 건강도 잃게 되어 억울하다는 여성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법륜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질문] 

십 년 전에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헤어졌습니다. 사과를 하여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가진 재산은 시숙이 다 팔아먹었습니다. 현재 저는 위암 말기 환자입니다. 자식들에게 없어진 재산에 대해 얘기해 주어도 지난 일이니 잊으라며 걱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억울하고 없어진 재산도 너무 아깝습니다. 

[답변]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이분은 결국 남편을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까지 잃었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부처님 말씀에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는 말이 있어요. 어리석어서 한 번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화살을 두 번, 세 번 맞지는 말라는 얘기입니다. 남편을 잃을지언정 재산을 잃지 않든지, 재산을 잃어버렸다 하더라도 남편은 잃지 않든지, 재산과 남편을 잃었다 하더라도 건강은 잃지 않아야 했는데 안타깝군요. 지금 남편 잃고 재산 잃고 건강까지 잃어버렸네요. 

지금이라도 지혜롭다면 아직 남아 있는 무엇인가를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남편을 잃었을 때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았고, 재산을 잃었을 때는 더 이상 잃을 게 없을 것 같았겠지요. 그러나 그때는 건강이라도 있었지요. 그때라도 지혜로웠다면 건강이라도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요? 

여보, 내가 나름대로 노력은 했는데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만약에 이분이 처음에 현명하셨다면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지 않게 하는 것은 남편의 요구가 뭔지를 잘 알아 살피는 겁니다. 바람을 피웠을 때는 나름대로 뭔가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지요. 그러나 같이 사는 사람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습니다. 성적인 불만 때문이든, 어릴 때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것이든, 무언가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에 방황했을 겁니다. 그것을 잘 살폈더라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미처 그것을 살피지 못했지요. 남편이 바람을 피웠을 때 이 분은 자기가 옳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그 때 ‘나는 잘한다고 했는데 무엇인가가 부족했구나.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하고 생각했다면 자신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겁니다. 남편이 정말 잘못해서 사죄하는 입장이고 부인이 큰소리 칠 입장에 있었을 때, 오히려 부인이 엎드려 절을 하면서 “여보, 미안해요. 내가 나름대로 노력은 했는데 당신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렇게 했더라면 이 문제는 한 번의 화살로 끝났을 겁니다. 

그런데 내가 잘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용서하지 않으셨지요. 그래서 끝까지 미워함으로써 누가 괴로워졌습니까? 자신이 괴로워졌지요. 결국 나와 함께 산 내 남편을, 내 자식의 아버지를 내가 평생 미워하고, 그 속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갈등 때문에 방황하게 되었지요. 이것이 제1의 화살입니다.

이미 찾을 수 없게 된 재산을 찾으려 애쓰는 건 어리석은 일

두 번째는 재산 문제입니다. 이미 재산은 어떤 이유에서든 날려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아까워해서 속이 상했어요. 속이란 게 위를 말하지요. 그래서 제1의 화살을 맞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결국은 건강을 해치는 제2의 화살을 맞은 거예요. 돈을 찾을 수 있다면 다만 찾기 위해서 애쓰지, 속상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찾을 수 없게 된 재산을 찾으려 애쓰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이미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치 꿈속에서 뱀에게 쫓기는 것과 같고, 신기루를 쫓는 것과 같고, 허공에 있는 헛것을 잡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자기의 건강을 해쳐버렸지요. 이제 죽음이 눈앞에 온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 계속 집착하게 되면 그나마 남아있는 명도 더욱더 단축됩니다.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마라

이렇게 해서 죽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원한이 맺혔기 때문에 결국은 무주고혼이 됩니다. 모든 것을 놔 버리고 염불을 했으면 극락정토에 태어날 텐데 결국은 그 한 때문에 여기를 떠나지 못하고 무주고혼이 되어서 지금 이생에서보다 훨씬 더 긴 세월 동안 훨씬 더 심한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영가가 되어도 법문을 듣고 한을 놓아 버리면 될 텐데 그 때도 놓지 못하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 결국은 원수를 갚을 겁니다.

그러면 새로운 원결이 맺어집니다. 즉 새로운 생에서 사람들은 과거에 자신이 진 빚을 갚는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지요. 아내가 바람을 피우거나 재산을 빼앗기는 과보를 받게 되겠지요. 그러면 이분이 겪는 것과 같은 한을 또 갖게 될 것이고 그 한이 또 이분에게로 돌아오면 이 분은 이 생의 고통보다도 훨씬 더한 고통을 또 겪게 됩니다. 원수를 다음 생에라도 갚아야겠다는 한을 품어서 다음 생에 그 원수를 갚으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는 날벼락이지요. 

그렇다면 내가 어느 날 당한 이 날벼락은 나도 모르는 그 전생에 내가 가져갔던 재산을 상대가 찾아가기 위한 것이고 내가 준 고통을 되돌려 주기 위한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가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원수를 갚고, 또 원수를 갚고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삶입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고 하신 겁니다. 그러니 일이 벌어졌을 때 ‘아이고, 제가 진 빚은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을 텐데 이 정도만으로 빚이 다 갚아진다면 이제 저는 만족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냈으면 원결은 여기서 끝나고 병고를 자초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이 지은 인연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과보를 받으면 늘 억울해 하는 것

우리는 우리가 지은 인연의 과보를 받는데, 그 지은 인연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과보를 받으면 늘 억울해 합니다. 지은 인연을 알면 억울하고 분할 일이 없습니다. 불자라면 인연 과보를 믿기 때문에 오늘 억울하고 분한 일을 당해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감사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보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라면 다시는 그런 인연을 짓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질문하신 분은 이런 과보를 받기가 너무나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어요. 지은 인연을 모르기에 이 과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과보들이 너무나 억울하다고 거부하면서, 또 이런 과보를 자초하는 인연을 짓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로 어리석네요. 지금이라도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세요.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세요

그런데 여기서 공부가 또 잘못되면 ‘왜 내가 이렇게 바보같이 살았느냐? 나 같은 건 죽어야 돼.’ 하고 자기를 학대하는 쪽으로 가기 쉬운데, 그러면 안 됩니다. 다만 ‘내가 어리석었구나. 부처님 말씀 듣고 보니 아, 내가 바보 같았구나.’ 이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지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서로 빚지고 빚 갚는 행위의 반복을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멈춘다는 것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벗어나는 것입니다. 시숙에 대해서는 ‘아, 이것으로 빚이 갚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고, 남편에 대해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참회함으로써 여기서 윤회의 고통을 끝내야 하는 겁니다. 그랬을 때 비록 오늘 죽더라도 인연의 과보,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육신을 버리는 순간 다시는 그런 인연의 사슬에 묶이지 않는 곳으로 가는 거죠. 나보다 더 잘사는 사람들도 이런 이치를 깨치지 못해서 세세생생 돌고 도는데, 남편과 시숙으로 인해서 이 인연의 이치를 깨칠 수 있었고 결국 해탈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가 있는 거지요. 재물이라고 하는 작은 이익을 잃음으로써, 또는 그 수많은 인연 중에 한 생에 잠시 스쳐간 남편이라고 하는 그 인연으로 인해서 해탈을 한다면, 이것은 참으로 작은 이익을 잃고 큰 이익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이 인연의 이치를 깨칠 수 있었으므로 남편과 시숙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작은 이익에 집착하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낚싯밥을 무는 것과 같고 쥐가 쥐약을 먹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인생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생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고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은 앞으로도 그것보다 수억만 배로 더 진행될 텐데 왜 이 찰나에 집착해서 나머지 생마저도 버리려고 합니까? 남편의 행위에 집착해서 이생을 괴롭게 보냈듯이, 재물에 집착해서 한 평생을 한으로 보냈듯이, 남아 있는 자기의 수명마저도 즐기지 못하고 병든 몸으로 생을 마감했듯이, 그 한을 갖고 가게 되면 앞으로 남은 수많은 생에서도 삼악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살아온 삶의 어리석음을 돌이켜 깨치면 앞으로 수많은 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병든 몸도 한탄할 것이 못 됩니다. 지금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뉘우쳐 깨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게 할 때 이미 상처를 입은 아이들의 마음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가슴 속에 맺힌 아빠와 삼촌에 대한 원망도 풀어 주세요

“얘들아, 엄마가 지난 몇 십 년 동안 잘못 생각했구나. 지금 내가 돌이켜보니 너희 아빠만 잘못했다고 할 수가 없다. 내가 참 부족한 게 많았다.” 이렇게 해 줌으로써 그들 가슴속에 맺힌 아빠에 대한 원망을 풀어 줄 수 있습니다. 삼촌에 대한 서먹서먹함을 풀어 줌으로써 아이들이 삼촌을 편하게 만날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엄마가 이렇게 한을 갖고 죽게 되면 그들은 일가 친척의 모임에 삼촌이 온다고 하면 가지 않으려 할 것이고, 가도 괴롭겠지요. 이렇게 해서 내 사랑하는 아이들의 삶을 제한하고 속박하게 됩니다.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삶마저 속박합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그들 가슴에 맺힌 한을 또 자식들에게 넘겨주게 되겠지요. 

속에 맺힌 것이 사라질 때 건강이 좋아집니다

이분의 말을 들으니 안타깝고,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네요.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그 고통이 확대 재생산될 뿐입니다. 그러니 엎드려 참회해야 합니다. 남편에게는 자신이 속이 좁아서 남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워한 것에 대해서 참회해야 하고, 시숙에게는 ‘내가 빚 갚은 것인 줄 모르고, 그 돈이 내 돈인 줄 잘못 알았습니다. 당신을 미워한 것을 참회합니다. 이것으로 빚이 다 갚아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속에 맺힌 것이 사라질 때 건강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풀면 내일 죽어도 아무런 한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어쩌면 기적같이 병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질문하신 분의 사정이 참 딱하고 안타까웠지만,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지금이라도 어떻게 마음을 먹는 것이 현명한 길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겪으신 분들 중 대부분이 남편을 원망하고, 시숙을 원망하고, 아이들에게도 그 원망심을 전달하고, 자신도 속앓이 하다가 힘든 삶을 살게 되지요. 하지만 스님 말씀대로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참회하고, 원망심을 오히려 잘 풀어낸다면, 건강도 좋아지고, 인생에 대한 큰 깨우침도 갖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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