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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부처님오신날,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무슨 뜻?

안녕하세요. 방금 전 오전10시 서울 서초동 '정토회'에서는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 기념법회가 열렸습니다. 


▲ 서울 서초동 정토회 


이른 아침부터 300여명의 대중들이 발디딜 틈 없이 모인 가운데 법륜 스님은 오늘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의미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불기 2559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불기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입멸기, 즉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얼마나 지났는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은 불기에 80년을 더한 2639년 전에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 법륜 스님


부처님께서는 숫도다나, 즉 정반왕을 아버지로, 마하 마야대비를 어머니로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 기슭에 있는 카필라바스투에서 그 나라의 왕자로 태어나셨습니다. 정반왕은 나이가 40세가 가까이 되도록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근심걱정이었는데 어느 해 가을, 축제를 지날 무렵에 마야부인이 자고 있는데 바깥에서 음악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왠 음악소리인가 하고 밖으로 나와 봤더니 저 하늘 위에서 음악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별빛이 하나 반짝반짝 타고 오고 있었습니다. 점점 가까이 와서 보니까 상아가 여섯 개 달린 하얀 코끼리 한 마리가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상아가 여섯 개 달린 흰 코끼리는 최고의 길상을 의미합니다. 코끼리가 점점 가까이 오더니 자신의 오른쪽 옆구리로 확 들어오는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눈을 뜨니 꿈이었어요. 이것이 태몽이었습니다. 이것을 도솔천에 있는 호명보살이 코끼리 모양을 하고 마야부인의 태중에 들었다고 표현합니다.


그 후에 태기가 있고 4월 봄날에 아기를 낳으려고 친정인 데바다하 천비성으로 가다 정오 무렵 카필라바스투와 데바다하의 중간지점 정도 되는 룸비니라고 부르는 숲이 우거진 동산에서 산기가 있어서 결국 그곳에서 천막을 치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길에서 태어나신 거죠. 그 때의 정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야부인이 가마를 타고 가다가 정오 무렵에 아쇼카 숲을 지나 가는데 아쇼카의 꽃들이 너무나 흐트러지게 피어 있어서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해서 가마를 내려서 많은 꽃나무 중에서 가장 꽃이 탐스러운 왕자다운 꽃나무에 이르러서 오른 손을 들어 그 꽃가지를 잡을 때 산기를 느꼈다, 그래서 주위에 급히 천막을 치고 아기를 낳을 준비를 했고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경전에는 오른 쪽 옆구리로 아이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늘의 사천왕들이 황금그물을 가지고 와서 아기를 받았고, 용왕이 더운 물과 찬물로 아기의 몸을 씻기자 아기의 몸이 황금빛으로 빛났습니다. 


▲ 아기 부처님


아이는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었고, 그 걸음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기는 한 손은 하늘을 향하고 한 손은 땅을 향해서 사자처럼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태어나셨을 때의 모습을 아주 아름답게 묘사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그대로 믿어도 되고, 믿을 수가 없다면 안 믿어도 됩니다.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은 우리와 다른 특별한 분이니까 특별한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믿어도 됩니다. 믿는 것은 자유니까요. 그러나 나는 못 믿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인류문화사적으로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의 오른 쪽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말은 인도의 설화에 따르면 바로 크샤트리아, 즉 왕족이라는 것을 상징합니다.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인도의 전통적인 신앙에 여섯 발자국은 윤회를 상징합니다.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이 있으며 인간은 자기 지은 업보, 즉 죄와 복에 따라서 돌고 도는데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은 지옥에는 가고 싶지 않아 하고 천상에서 태어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설령 천상에 태어난다고 해서 그 복이 영원한 것이 아니고 지옥에 떨어진다고 해서 그 고통이 영원한 것도 아닙니다. 고와 락이 되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고와 락이 되풀이 되는 것 자체가 고라는 것입니다. 이 윤회에서 벗어난 것이 해탈이고 열반입니다. 여섯 발자국은 윤회를 상징하고 일곱 발자국은 그 일곱 발자국에서 벗어났다, 즉 해탈 열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무슨 말일까요? 여기서 천상이라고 하는 것은 신들의 세계를 말하고, 천하라고 하는 것은 인간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신들의 세계와 인간 세계를 통틀어서 나 홀로 가장 존귀하도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라고 하는 것은 깨달은 이, 붓다를 말하는 것입니다. 붓다가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신들보다도 존귀하고 그 어떤 인간보다도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 존중받을 분이라는 뜻에서 세존이라고 부릅니다.



누구든지 다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이 모두야 말로 각자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물질이, 돈이, 지위가, 명예가, 쾌락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 사람, 나 자신이 가장 존귀하다는 인간존엄을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물질이나 권력, 신념이나 이념, 믿음이나 신의 노예가 되어서고 안되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이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은 얼굴이 검든 희든,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신체가 건강하든 장애가 있든, 성적 취향이 이렇든 저렇든, 어릴 때 부유한 집에서 자랐든 가난한 집에서 자랐든, 양반이든 상놈이든 그 모든 조건에도 불문하고, ‘모든 사람은 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행복할 수 있다’, ‘해탈할 수 있고 열반에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열반과 해탈을 증득한 자야말로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지위나 인기가 높고, 지식이 많아도 그것으로는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오직 깨달음만이 진정한 자유, 진정한 행복인 해탈과 열반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즉, 이 깨달음을 얻은 자가 가장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깨달음을 얻으신 고타마 싯다르타가 가장 존귀하다는 말도 되지만, 우리 모든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는 뜻도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더 이상 물질, 권력, 인기, 이념, 믿음의 노예가 되지 말라. 네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니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 되어라. 네가 네 인생을 행복하게 해라. 너를 자유롭게 만들어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한 구절만 기억을 하지만, 다음 구절이 있습니다. ‘삼계개고 아당안지’입니다. 삼계라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욕계뿐만 아니라 색계와 무색계를 통틀어서 이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이 우주 법계가 모두 다 괴로움이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괴로움에 빠져 있으니 내가 이를 편안케 하리라, 구제하리라’ 하는 말씀입니다. 즉,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고 내가 이 우주의 주인이 되는 것은 그의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 받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도 다 이렇게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교화하리라, 전법하리라, 인도하리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먼저 내가 부처가 되고 또 일체 중생도 다 부처가 되도록 인도하리라, 내가 행복해지고 다른 이들도 행복해지도록 인도하리라, 내가 자유로워지고 다른 사람도 자유로운 세계로 나아가도록 인도하리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리이타’ 즉 나도 이롭고 너도 이롭다, ‘상고보리 하와중생’ 위로는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구제해서 정토세계를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한 평생 살아가셨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남을 행복하게 하셨다’,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남도 자유롭게 하셨다’, ‘자기가 자시 인생의 주인이 되고 남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도록 인도하셨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표현한 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곡 아당안지’입니다. 부처님이 오신 것은 괴로워하는 우리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서 행복하게, 속박 받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길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이 그 길을 먼저 찾아 나서서 그 열반의 세계로 도달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셨다는 것, 이것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서 이렇게 연등을 밝히고 부처님 오심을 찬탄하지만,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것의 가장 핵심은 이 분의 오심이 이런 뜻이니 나야말로 이 길을 따라가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 분이 오신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금까지는 ‘재물을 많이 갖도록 해달라’, ‘돈 많이 벌도록 해달라', '출세하도록 해달라’,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 이런 식으로 부처님께 빌었는데, 부처님이 오심을 자세히 살펴보니 이런 것들로 우리가 진정한 행복, 열반에 이를 수가 없고, 우리의 무지, 어리석음을 깨우쳐야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와 행복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투신 뜻과 평생의 삶을 오늘 우리가 다시 새겨서 돈, 권력, 명예, 인기 등과 같은 것들로 인해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해서 그것들의 노예로 살아왔음을 깨닫고, '이게 잘못 됐구나. 내가 더 이상 그 무엇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되겠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야겠다.'고 알아야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어떤 핑계나 이유를 대고 내 괴로움을 합리화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아들이 공부를 안해서,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돈을 못벌어서, 어머니가 잔소리해서 괴로운 거라면, 그것은 '나는 괴로울 수 밖에 없다. '고 정해놓고, 왜 괴로운지 이유를 붙이는 것이에요. 왜 괴롭냐고 하면, 어떻게 안 괴롭냐고 하죠. 괴로울 수 밖에 없다고 합리화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괴롭고 싶다는 얘기에요. 그래서 내가 '안 괴로워도 될 거 같은데'라고 해도, '아니에요! 저는 괴로워요!'라고 하죠. 우리는 늘 이렇게 괴로울 수 밖에 없다고 자기를 규정지어 놓고, 온갖 이유를 댑니다. 근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괴로움의 원이 아니라, 그것을 괴로움의 원인으로 자기가 규정하는거죠. '나는 혼자이기때문에 속박을 받지 않고 자유로워서 좋다', '나는 둘이 살기때문에 외롭지 않아서 좋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기때문에 나는 책임을 안지니 좋다', '어머니가 계시기때문에 나는 은혜를 갚을 수 있으니 좋다' 이렇게 있는 것은 있어서 좋고, 없는 것은 없어서 좋고, 모든 것을 다 좋은 쪽으로 해석하면 다 행복의 근원이 되고, 모든 것을 다 괴로움의 원인으로 규정하면 내 인생이 괴로워 지는 거에요. '어머니가 계셔서 모시기 힘들다' '어머니가 안계셔서 효도할 데가 없다' 이렇게 자기가 괴로울 수 밖에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인생을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인생으로 규정을 해놓고,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돈만 있으면, 출세만 하면 된다, 인기만 있으면 된다, 건강하면 된다, 믿으면 된다라고 생각하고 살죠. 그런데 이 얘기는 봉사가 눈을 감고 ‘불 밝혀라’ 소리치는 것과 같고, 촛불을 10개 밝혀도 어두우니 '20개 밝혀라’, 20개 밝혀도 어두우니 ‘100개 밝혀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촛불의 문제가 아닙니다. 눈을 뜨면 됩니다. 눈을 뜨면 이미 세상은 밝아져 있습니다. 괴로울 이유가 있는게 아닙니다.


근데 이것은 눈을 뜨고 보면 맞는 얘기인데, 눈 감은 상태에서는 이해가 안되죠. 촛불을 밝혀도 밝아지지가 않는데, 촛불을 안켜고 어떻게 밝아지는지. 눈감은 사람은 천번 들어도 이해가 안됩니다. 눈을 한번 떠 보면, '아, 세상은 본래 밝구나' 알 수 있습니다. 잠꼬대하는 사람이 꿈 속에서 강도를 만나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칠 때, 옆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가만히 방에 누워서 악을 쓰는 것처럼 보이죠. 그래서 '야, 아무도 없어. 왜 그래' 라는 소리를 해도 귀에 안들어 옵니다. 무슨 소리냐, 강도가 칼을 들고 쫓아오는데 그런 비현실적인 소리를 하느냐 싶죠. 꿈을 깨기 전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들리지가 않죠. 근데, 눈을 뜨면? 아무것도 없어요.


눈뜨는 소식, 잠에서 깨는 소식. 이것을 우리는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눈을 감고, 잠을 자면서 얘기를 듣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눈을 떠보면, 잠에서 깨면 그게 맞죠. 그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눈 감은 사람의 눈을 뜨게 하는 거에요. 눈을 번쩍 뜨면 할 일이 없는데, 계속 촛불만 가져다 쌓고, 도망만 다녀요. 그러니 이래도 저래도, 와도 가도, 재산이 있어도 버려도, 결혼을 해도 혼자살아도 해결이 안되죠. 어릴때는 어려서 괴롭고, 사춘기때는 사춘기라서 괴롭고, 대학다닐 때는 대학다녀서 괴롭고, 총각 때는 총각이라 괴롭고, 결혼하면 결혼해서 힘들고, 애 낳으면 애 낳아서 힘들고, 애 키우면 애 키운다고 힘들고, 애 다키우면 외롭다고 힘들어하고, 젊을 때는 젊어서 힘들다 하고, 늙어서는 늙어서 힘들다고 하죠. 그러니까 이게 끝이 없는 인생길이다 이 말이에요. 그럼 인생이란건 원래 이렇게 끝이 없을까요? 아닙니다. 어릴 때는 어려서 좋고, 사춘기 때는 사춘기가 좋고, 대학생때는 대학생일 때가 좋고, 총각 때는 총각때가 좋고, 결혼하면 결혼해서 좋고, 애 있으면 애가 있어서 좋고, 애가 있으면 애가 커서 좋고, 늙을 때는 늙어서 좋죠. 이러면 늘 좋은 인생이에요."


1시간 동안의 법문이 끝나자 대중들은 감로의 법문을 해준 스님께 뜨거운 감사의 박수를 치며 기뻐하였습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스님께서 법문해준 내용을 잘 새겨서 모두 행복한 나날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