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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새해 첫날 밀양 분향소 찾은 법륜 스님 "늦게 와서 죄송"

2014년 1월1일 새해 아침, 법륜 스님이 밀양 송전탑 문제로 갈등하다 농약을 먹고 숨진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찾았다. 해마다 새해가 밝아오면 법륜 스님은 가장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간다. 작년 새해에는 울산 현대자동차 고공 철탑농성 현장을 찾았고, 올해 새해에는 밀양시 삼문동 밀양교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와 어르신들을 위로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눴다.


법륜 스님은 분향소에 도착하자마자 고 유한숙 어르신의 위패를 모신 영가단에 향을 꽂고 고인의 넋을 달랬다. 얼마 후 고 유한숙 어르신의 큰아들 유동한씨와 밀양 시의원 문정선씨가 법륜 스님의 방문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 새해 첫날, 법륜 스님이 밀양 송전탑 문제로 갈등하다 농약을 먹고 숨진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찾아 향을 꽂고 있다.


분향소는 종이 박스들과 비닐 몇 장으로 겨우 겨울바람을 막아내며 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분향소 안에는 밀양 어르신들 몇 분이 이불을 덮고 추위를 달래고 있었다. 법륜 스님은 어르신들 한분 한분의 손을 꼭 잡고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라며 머리 숙여 인사했다.  


고 유한숙 어르신의 큰 아들인 유동한씨는 법륜 스님을 보자마자 그동안 밀양에서 일어났던 갈등들을 상기하며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 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밀양 시청에 콘테이너라도 하나 구해서 49재를 지내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시청에서 허락을 안 합니다. 밀양 어느 곳에도 자리를 내주지 않아서 이곳에 이렇게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이유는 송전탑이 들어서는데 더 이상 하소연 할 곳도 없고 억장이 무너지니까 혼자 세상을 버리신 겁니다. 가족들이 아버님께 왜 약을 먹었냐고 하니까 분명히 765 때문에 그랬다고 했어요. 그 자리에 경찰도 한명 있었어요. 그런데 경찰은 이것을 왜곡 보도했습니다. 빚이 많아서 죽었다, 가정불화가 있었다,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그래서 아직 장례도 못 치르고 영안실에 계십니다. 저희들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닙니다. 한전(한국전력)과 밀양시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하는데 그들은 사과조차 할 생각을 안 하고 있습니다."  


유가족과 이곳 어르신들은 어르신의 사망 원인이 왜곡되고 있음을 가장 안타까워했다. 법륜 스님은 "멀쩡한 어르신이 갑자기 돌아가셨으면 송전탑 때문이 아니고 다른 이유가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라고 반문하며 어르신들의 안타까움에 공감했다. 



▲ 법륜 스님이 밀양 시의원인 문정선씨로부터 송전탑 공사로 인한 밀양 주민들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있다.



▲ 고 유한숙 어르신의 큰 아들인 유동한씨가 법륜 스님에게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법륜 스님이 "가을에 추수는 제대로 하셨습니까?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농사를 못 짓고 있잖아요?" 라고 어르신들께 되묻자, 옆에 앉아 있던 이순출 할머니(76)도 눈살을 찌푸리며 답답함을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땅만 있으면 할매들이 알아서 먹고 살긴데, 이래 땅을 다 뺏기니 너무 억울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짓밟을 수가 있습니까. 너무 해요. 참말로. 우리도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인데요. 자식들 안 먹이고 안 입히면서 힘들게 일군 땅이라예."


할머니의 하소연에 고개를 끄덕이던 문정선 시의원이 이야기를 덧붙였다. 


"철탑이 들어서면 항공 방제도 안 됩니다. 헬기로 1년에 서너번씩 방제를 해주는데 탑이 있으니까 항공 방제에 대한 허가가 안 납니다. 그리고 1년에 관광객이 2,3백만명 와서 과일도 많이 사갔는데, 69개의 철탑이 들어서면 관광객도 줄어듭니다. 이대로 가면 10년 안에 밀양은 피폐해 집니다."


송전탑이 들어서면 전파 때문에 건강만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방제를 못하니까 벌레가 들고 수확이 적어져 농사에도 지장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너무 밀양 주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억울하다며 법륜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법륜 스님이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정말 유감이다 이런 정도의 사과 표명도 없었나요?" 라고 묻자, 고인의 큰 아들인 유동한씨는 "한 번도 없었어요" 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한전이나 밀양 시청에서는 사과도 없고 보상 이야기만 자꾸 합니다. 얼렁뚱땅 묻으려고만 하고 있어요." 라며 사과라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간곡히 표현했다.  


그러나 현재 한전(한국전력)은 전혀 사과에 대한 의지가 없는 상황이다. 문정선 시의원은 "한전은 이런 사고가 계속 날 줄 알고 있지만 공사 중단은 절대 없다는 입장입니다. 공사 끝나고 나서 보상 문제 협상을 하겠다고 합니다." 라며 현 상황을 답답해했다. 이순출 할머니도 "땅은 대대로 물려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너무 억울해요. 이 분을 못 참으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납니다." 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함께 앉아 있던 어르신들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법륜 스님은 어르신들의 손을 꼭 잡으며 "저희들이 큰 도움은 못되지만 방문이라도 해서 위로가 되어드리고자 한다" 며 소정의 금일봉을 대책위에 전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보상은 고사하고 우선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야 정치인데요... 옛날에는 가난해도 다 마음 편하게 잘 살았잖아요.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나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나, 이미 돌아가신 이상 저 세상으로 잘 보내드리는 게 산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49재 지내시고 편안하게 가시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싸우는 건 또 싸운다 하더라도 말이죠. 


물론 송전탑 공사가 멈추면 모두 해결 되겠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싸움은 길어질 것 같잖아요. 우선 돌아가신 고인의 사인이 억울하게 왜곡된 것만 풀어지면 장례는 치루면 좋겠어요. 저도 노력해 보겠습니다. 세상에 참... 정치를 잘 하겠다고 하더니 정치가 자꾸 잘못되어 가네요." 


법륜 스님의 위로 방문에 유가족과 어르신들 모두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문정선 시의원은 "이렇게 큰 걸음 해주시니 큰 언덕이 생긴 것 같다" 며 감사해 했고, 이순출 할머니도 "찾아와주시니 얼마나 고맙습니까" 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 법륜 스님이 고 유한숙 어르신의 분향소를 찾아 밀양 어르신들을 꼭 안아 드리고 있다. 그동안의 마음 고생에 위로의 말을 건내자 어르신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법륜 스님은 분향소를 나오며 어르신들과 유가족들을 꼭 안았다. 한 맺힌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전달되어서 일까, 몇몇 어르신들은 급기야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