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빈곤퇴치

맨발의 아이들, 선생님 되다.. 눈물 핑 돌아

어제밤 SBS스페셜에서 밤11시에 방영된 ‘맨발의 아이들, 선생님 되다’ 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뭉클했고 어떻게 저런 기적 같은 일이 저 가난한 천민마을에서 만들어지고 있을까 감동했습니다. 맨발의 아이들이라 함은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말합니다. 이 아이들이 가난 속에서도 배움의 기회를 얻어가며 선생님이 되어가는 과정은 전세계 어떤 국제구호단체의 활동에서도 찾기 힘든 매우 돋보이는 롤모델을 제시해 주고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은 학교에 갈 수도 없는 천한 존재입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아직도 태어난 신분에 의해 차별받고 고통과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영상 첫머리에 18년 동안의 마을의 변화과정을 쭈욱 지켜본 할아버지가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마을은 인도에서 가장 천한 곳 아무도 발길을 들이지 않는 곳입니다. 우리는 까마듯한 옛날부터 구걸을 하고 살았습니다. 어느날 한 외국인이 방문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외국인의 방문이라... 그는 바로 법륜스님입니다. 18년 전 인도에 성지순례를 갔다가 구걸하는 아이들을 만났고 인구가 만명이 되는 마을에 학교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를 세웠습다. 수천년간 문맹 상태에 놓여져 있던 둥게스와리 마을에 최초로 학교가 탄생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 마을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 학교의 이름은 ‘수자타 아카데미’입니다. 불가촉천민이 최초로 다니게 된 학교라 부를 수 있겠네요. 이런 의미있는 학교를 한국인이 세웠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카메라는 다시 둥게스마을에서도 가장 가난한 아자드비가 마을로 찾아갔습니다. 이곳 마을주민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 소개되었는데, 하루 종일 근처 채석장에서 몸이 부서저라 망치질을 해가며 벌 수 있는 돈이 1100원입니다. 이 돈으로 대여섯 식구가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말 돈이지만 이들에게는 몸이 녹초가 되도록 일해야 받을 수 있는 돈입니다. 채석장에서 일하는 한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희망 따윈 꿈꿔본 적이 없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들의 고통과 가난 위에서 내가 행복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죄책감 같은 것이 제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10년 전 대학시절 인도체험 해외봉사활동을 신청해서 갔었던 적이 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건물을 지어주며, 이 아이들만큼은 가난을 대물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 때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다시 카메라는 ‘빠완’ 이라는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계급 차별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모습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의 롤모델이자 높은 선망의 대상인 이 선생님도 바로 수자타아카데미 졸업생이라 합니다. 이 친구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다른 인도의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자타아카데미에서 무상교육을 받고 이렇게 선생님이 되어 자기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구나... 빠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장사하는 계급, 죽은 소를 치우는 계급... 인도에서는 성만 들어도 계급을 알 수 있죠.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람은 다 똑같다는 것입니다. 차별하면 안 돼요.”
 
계급에 의한 차별을 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한 교실에 양민부터 천민까지 다양한 계급의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있는 풍경도 참 신선했습니다. 인도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이지만 한국인이 세운 이 학교에서는 그것이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원래 인도에서는 브라만이 사용하는 우물에서 천민이 물을 마시면 죽음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자타 아카데미에서는 계급이 다른 아이들도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학교 안에서는 똑같은 교복을 입고 계급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성씨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들 사이에서는 계급이 존재 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모두 평등했습니다.

영상 속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장면은 후배들을 가르치는 중학생들이었습니다. 한국처럼 발달된 선진국에서도 중학생이 선생님이 되어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요. 하지만 불가촉천민이 살고 있는 이곳에서 중학생들이 유치원생을 가르치고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고땀’ 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민들이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가 들어서고 나서 우리 마을은 달라졌습니다.”

구걸하던 아이들도 없어졌고, 질병도 없어졌고. 천민이 선생님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물론 기분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가장 끔찍했던 일인 학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 소개되었습니다. 저 멀리 한국에서 자원봉사를 하러 온 설성봉씨가 이곳 현지인이 쏜 총에 맞고 운명을 달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한국 사람들이 모두 철수할 것이고 학교도 문을 닫게 될 것이란 불안감이 감돌았습니다. 이 때 이 학교를 세운 법륜스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이 죽는 것을 각오하고 들어갔기 때문에. 귀중한 생명을 잃었지만 학교는 문을 닫지 않았다. 학교를 지으려 했던 설성봉씨의 희생을 헛되이 할 수는 없었다. 하루도 문을 닫지 않고 학교는 정상적으로 운영했다.”

봉사자들의 큰 희생이 따랐지만 그러함에도 계속된 마을개발. 이런 헌신적인 노력 덕택에 마을사람들은 더 큰 감동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의 진심을 알게 되었기에 더욱더 협조적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게 된 것이죠.

가난해도 다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지원을 받는 것보다 백배 천배의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수자타아카데미는 아이들에게 나누는 기쁨도 함께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수업을 마친 하교길에는 항상 쌀 모으기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소중한 땅을 기부하여 학교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남을 돕는 삶을 배웠다.” 

18년 전 한 외국인(법륜스님)이 이곳에 학교를 세웠고 그 때 이후로 많은 한국의 자원봉사자들이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자원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나누는 삶을 꿈꾸게 된 것입니다. 가슴 뭉쿨했습니다. 이제 학교 안에서의 변화가 한 줄기 바람이 되어 학교 밖으로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18년전 구걸할 줄 밖에 몰랐던 아이들은 이제 마을의 리더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의 결말은 아직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작은 기적은 계속될 테니까요.

구걸하는 아이들이 선생님이 되고 남을 돕는 삶을 배워나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나는 이들보다 가진 것이 백배 천배 많으면서도 얼마나 불행하고 살고 있는가 되돌아보았습니다. 작은 것을 함께 나누고 서로 도울 때 행복은 배가 된다는 것을 크게 느꼈습니다. 맨발의 아이들의 삶이 제 삶에도 큰 희망을 던져주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