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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진정성에 갇힌 남북관계, 대북정책은 없었다

2011년의 남북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시쳇말로 표현하면 "이건 아니다." 입니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 안정에 걸었던 국민의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로 끝나고 말았으니까요. 남북 간의 정치 군사적 긴장은 더욱 팽팽해졌으며, 주변국의 개입 소지를 넓혀 우리의 안보환경은 더욱 각박해졌습니다. 5.24조치에 따른 우리의 경제적 손실도 더욱 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북한에 정치적 연계를 하지 말라고 주장해오던 인도적 문제의 해결도 요원해 보입니다. 왜, 무엇이 남북관계를 이렇게 파탄으로 몰아갔을까요? 2011년의 남북관계를 바라보면서 북한의 ‘진정성 없는’ 태도를 탓하기보다는 우리 정부의 무책임과 관리 능력 부재에 허탈감을 안게 됩니다.

노를 놓친 쪽배, 2011년 대북정책은 없었습니다.
 

남북관계 개선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사안이 아닙니다. 헌법 전문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대한민국의 사명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남북관계 개선은 이를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도정의 하나입니다. 또한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우리가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고, 우리의 국가전략도 원활히 수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전략적 지혜를 모아야 하고, 적절한 대책방안들을 수립하여 내외에 당당히 설득하고 자신감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어진 환경이 어려울수록 이를 타개해 나가기 위해 더욱 치밀하고 성찰적인 자세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올해 초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시키겠다는 의지만 있었어도, 그리고 그토록 강조하는 ‘유연성’을 조금이라도 발휘했더라면 남북관계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북한은 새해 벽두부터 “무조건적인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제의했습니다. 1월 10일 북한은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 조선적십자회중앙위원회 위원장,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북측 소장 명의로 각각 1통씩의 통지문을 발송해왔구요. 그 내용은 당국 간 실무접촉과 적십자회담을 개최하고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사업을 재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통일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북한의 이 같은 통지문이 “국제사회에 대한 위장평화 공세이자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기 위한 상투적 전술의 일환”이라면서 “북한은 그동안 국면 전환을 위한 목적으로 수십 차례나 이 같은 행태를 보여왔다.”며 이 제의들을 일축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가 문제였습니다. 이어 “남북 간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려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및 추가도발 방지 확약과,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확인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이를 위한 남북 당국 간 만남을 제안한다.”고 했습니다.

북한을 보는 정부 당국의 눈은 “북한은 금강산 피살 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등으로 막대한 우리 국민의 희생을 초래하고도 자신의 책임을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경제 지원과 원조를 받기 위한 회담만 제의하고 있다.”는 데만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북한의 제의 주체인 ‘아태’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습니다. 물론 ‘아태’가 북한의 내각이나 당의 공식기구가 아니기는 하지만, 그동안 우리 정부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이 기구를 당적 부서로 의제하여 대화 상대로 삼아 왔는데 이를 전면 부정해 버린 것입니다. 그 후에 고위급 군사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회담이 열리기는 했지만, 이 또한 북한이 “더 이상 상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감으로써 남북관계는 동파상태를 맞이해야 했습니다. 이로써 우리의 대북정책은 ‘진정성’에 갇혀 노를 잃어버리고 외풍에 맡겨진 쪽배가 되어 버린 몰골입니다.

'All or Nothing' 에서 벗어났으면

통일부가 내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및 추가도발 방지에 대한 확약과,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확인 요구는 “전부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강력한 거부의사 표시였습니다. 이것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답답할 일이 없다는 승자의 당당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대화를 함으로써 문제를 풀려는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먼저 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강자의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이러한 일방적인 강압은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남북관계 개선의 출구를 꽁꽁 막아버리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 후 우리의 대북정책은 그 콘텐츠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진정성’ 부재 타박으로만 일관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6자회담과 관련해서도 성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남북한은 7월 아세아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만나 2008년 12월 이후 교착상태에 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회담에 우리 정부는 ‘남북한 최초의 비핵화 회담’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6자회담의 재개와 더불어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적지 않았지요. 6자회담 재개협상과 남북대화가 일정 수준에서 선순환의 효과를 발휘할 경우 6.25 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될 수 있는 가능성도 엿보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가 발목을 잡고, 6자회담 개최로의 진전을 방해하는 족쇄로 작용하고 말았습니다.

발리에서의 회담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다시 대화와 협상의 장으로 가져가는 한편,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데 남북이 함께 동의한 것이라면, 우리 정부는 이 같은 계기를 적극 활용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했습니다. 적어도 핵문제 해결에 대한 북한의 즉각적인 이행을 남북대화의 전제로 삼는 것만은 거두어 들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한 3단계 프로세스마저 천안함 사건의 사과 없이는 시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북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 타령은 계속될 뿐이었습니다.

그 후 북한이 금강산 독점권 취소와 함께 재산권의 처분을 가시화하는 조치를 취하자 우리 정부는 7월 25일 북한 측에 금강산 관광과 관련한 당면 문제들을 협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금강산 사업자들의 ‘재산권보호가 우선’이라고 하면서도 ‘금강산 관광과 관련한 본질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분위기 조성을 위해 연평도 사태 이후 중단됐던 민간단체의 대북 밀가루지원도 승인했습니다. 그러나 남북 간의 신뢰 상실은 부분적인 유연화 조치로는 땜질할 수 없는 구조화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지난 2010년 2월 8일 금강산 관광 관련 남북회담에서의 악몽에 빠져 있는 북한은 남한 정부의 제의를 일거에 거절했습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은 그야말로 남북관계 개선의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문제가 풀려야만 정부의 대북정책이 정당성을 인정받게 됩니다. 북한이 이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원하는 성의 있는 자세를 취해주기라도 한다면 “그것 보라, 정부가 취한 모든 대북한 조치와 자세는 잘못이 없지 않는가. 결국 북한이 무릎을 꿇었다.”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이 직접적이고 공개적으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해 나올 가능성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여기에 전적으로 매달린다는 것은 오히려 그만큼 우리 정부의 대북한 입지가 약하고 대북정책의 반경이 좁다는 증거입니다.

이건 아니다! 2012년에는 자신감을 갖고 우리가 북한을 움직이도록 해야

2011년 한해가 저물고 2012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남북관계사에서 2011년은 어떻게 평가될지는 자명합니다. 1953년의 정전체제가 아직도 한반도를 짓누르는 가운데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태를 경과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우리는 평화와 통일에의 희망을 접을 수는 없습니다. 어렵고 험난한 길일수록 그 목적지에는 더 큰 광영(光榮)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2011년의 남북관계 전개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하고 우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질책하면서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절실함을 더욱 느끼게 됩니다.

결국 문제는 남북관계입니다. 남북관계가 풀려야 6자회담 등을 통한 북한 핵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고, 북한의 태도 변화도 추구해 나갈 수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단절된 채로는 우리의 대북 레버리지가 없어 '비핵'도 '개방'도 허언으로 끝나고 맙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 북한이 취하고 나올 태도는 분명하니까요. 북한은 미.중 알력의 공간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강온 양면으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 오히려 더 많은 카드를 쥐고 남한을 어려운 처지로 몰아갈 것입니다. 북한이야말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도 안 되어도 그만인 것입니다. 물론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을 확보하고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주변국의 수요에 부응하는 측면에서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겠지만, 한반도 긴장 고조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대남 무력도발이나 핵실험 등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압적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모든 기대를 접고 내년의 총선, 대선 등 우리 정치상황에 개입하면서 북한식 ‘전략적 인내’로 버틸 것입니다. 그들로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절실하지도 않고 결코 서두를 필요도 없는 것이니까요.

우리 정부는 대북정책을 자존심의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으로부터 기대하는 성과를 얻지 못한 채 대북정책을 바꾸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없습니다. 12월 대선까지 1년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대북정책을 전환할 경우 오히려 레임덕이 가속화되고 핵심 지지층의 불만을 살 수 있다는 계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 개선의 역사적 책임을 외면한 채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했다는 것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남북관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제대로 복원하는 일마저 어렵게 만든 현 정부를 역사와 국민이 어떻게 평가할지는 불문가지입니다.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습니다. 민족사의 주체로서 자신감을 갖고 우리가 북한을 움직이도록 해야 하며,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를 주시하면서 대처방안이나 짜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입니다. 아무래도 그건 아닙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새로운 차원의 남북관계를 이끌어 갈 것을 과감히 결단해야 합니다. (이 글은 평화재단 현안진단 제39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