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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콘서트

안철수 사회환원, 청춘콘서트에서 직접 들은 내용

안철수 원장은 어제(14일)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절반인 1500억원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밝혔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의 소신과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전문에는 사회환원에 대한 그의 진정성이 깊게 묻어나 있어 더 큰 감동을 자아냅니다. 우리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다,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 하나라도 있는 게 자랑스럽다, 등등 칭찬이 쏟아집니다. 그동안 우리사회의 각종 비리에 앞장서온 기득권층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를 보임에 국민들은 기쁨의 충격에 휩싸였습니다.ㅎㅎㅎ

어제 오후 이 신문기사를 인터넷에서 확인하는 순간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내 곧 ‘그렇지. 당연히 이렇게 할 분이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난 여름 안철수 박경철의 청춘콘서트를 취재하러 전국 27개 지역을 따라 다녔는데, 안철수 원장이 자주 청춘들에게 강조해 준 이야기가 “사회에 대한 환원” 이었기 때문입니다.

어제(14일) 안철수연구소 측도 "안 원장이 청춘콘서트를 하면서 재산 환원을 생각해왔다"며 "콘서트가 끝나고 발표하려 했지만 갑자기 서울시장 선거가 생겨서 하지 못했던 것인데 더 늦추면 안될 것 같아서 오늘 메일을 보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 아침 '안철수 사회환원'에 대한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원장이 '사회환원'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이야기들을 했는지를 다루는 기사는 없어서, 청춘콘서트 현장에 있었던 제가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청춘콘서트에서 박경철 원장은 안철수 원장에게 여러 차례 “왜 그렇게 직업을 자주 바꾸시냐?”고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안철수 원장은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을 이야기했었습니다.

안철수 원장의 1500억 사회환원…. 안철수 원장이 안연구소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전문에는 “"오랫동안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작은 결심 하나를 실천에 옮기려고 한다”라고 적혀있습니다. 지난 여름 청춘콘서트에서 안철수 원장이 청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에는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작은 결심'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1500억 사회 환원은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그의 평생을 관통해 온 소신이라는 점입니다.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그의 모든 삶의 궤적에 녹아있는 가치관입니다.

△ 2011년 8월28일 진주 청춘콘서트에서 박경철 원장과 대담을 나누는 안철수 원장. 이 날 안철수 원장은 자신을 평생 움직여 온 원동력은 바로 '사회 환원' 이었다고 말해 많은 청춘들의 감동을 자아냈습니다.

"계속 의학 연구했다면 촉망받는 의사가 됐을 텐데..."

- 박경철 : 안쌤은 의학계에서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계속 의학 연구를 했다면 굉장히 촉망받는 의사가 되었을 텐데, 왜 어두컴컴한 밤에 컴퓨터 앞에서 바이러스 연구하고 백신 만들고… 아무튼 왜 그런 선택을 하셨습니까?

- 안철수 :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었습니다. 27년간 학교를 다녔습니다. 학교를 남들보다 훨씬 오래 다닐 수 있었던 건 사회에서 저에게 혜택을 많이 준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사회로부터 많이 받고 있는데, 나도 조그만 역할이라도 해서 받은 일부라도 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의료봉사활동이었습니다. 토요일이 되면 구로동에 가서 봉사진료하고, 방학이 되면 무의촌에 가서 아픈 분들을 진료했습니다. 봉사하면서 사회에 대해서 많이 깨달았어요. 어느 날 왕진을 갔었는데, 사회적인 안전망이 없을 경우엔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존귀함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생계비를 못 벌어서 두 부부가 깨어지는 것을 봤어요. 또 손녀와 할머니 두 명이 사는데,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도망가고 둘만 남았습니다. 손녀가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배달을 해서 할머니를 먹여 살렸는데 나중에 다시 돌아가보니 장례식장이 되어 있더라구요. 손녀가 도망을 가서 할머니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회의 구성원을 굶어 죽게 만드는 것은 국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 박경철 : 그래도 잘 나가던 의사였는데... 백신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공감이 잘 안 가네요…

- 안철수 : 그 때도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었습니다. 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더라구요. 대학원에 가게 되니까 더 이상 의료봉사를 못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컴퓨터 바이러스가 발견되었습니다. 피해가 컸는데 아무도 나서서 해결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보니까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된 겁니다. 그 이후 바이러스가 발견 되면 전부 저한테 부탁을 하러 오더라구요. 이 일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고, 국가 사회적으로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일이겠구나 느꼈습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일부라도 다시 사회로 돌려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돈을 벌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그래서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쓰며 도움받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과 보답이 되었습니다. 사회에 대한 기여만으로도 충분히 기뻤기에......

- 박경철 : 거기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벤처 기업가로 또 변신을 합니다. 그 다음에는 벤처 기업 사장 자리도 그만 두고 학생 신분으로 공부를 하러 떠납니다. 그러다가 다시 교수로 변신했어요. 직장을 너무 자주 바꾸십니다. (웃음) 어떤 이유인가요?

- 안철수 : 안연구소를 10년 째 경영했을 때 입니다. 우리나라는 소프트웨어 사업하기가 힘듭니다. 그렇지만 안연구소는 순이익 100억을 돌파한 최초의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편안하고 행복한 시기에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안연구소는 전망도 좋고 편안한 곳이 되었는데, 주위에서는 벤처기업들이 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고민하다가 내 경험과 지식을 함께 나누어서 다른 사람들을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 전반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일이야말로 사회에 정말 필요한 일이겠다 싶었어요. 한 회사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업계 전체를 도와야겠다 이 생각이었습니다.  

- 박경철 : 가치관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인생의 목표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가치관입니다. 가치관에 맞춰 목표를 정하고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이런 기준이 없으면 남을 짓밟는 성적과 등수가 최고인 줄 압니다. 그렇게 돈을 벌면 돈을 다 벌고 나서 인생 전체가 허무해질 수 있습니다. 안쌤의 가치관은 "성공은 나 혼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는 겁니다.

- 안철수 : 사업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열심히 해도 실패하고 열심히 안 해도 실패하더라구요. 10년간 회사를 경영하며 느낀 것은 성공에 내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주위사람들의 도움과 사회에서 제공해준 기회 덕분입니다. 성공했다고 100프로 내 몫은 아닙니다. 나머지는 도와준 사람들의 몫입니다. 치열하게 사업하면서 스스로 느꼈던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이것은 모두 나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흔히 보는 성공 스토리는 개인이 불굴의 의지로 성공을 했다는 것인데, 아프리카에 태어났다면 그게 과연 가능했을까요? 어쩌면 그런 생각이 천민 자본주의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한쪽으로 기울면 그 반동이 심해집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그러한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과 합의가 중요합니다.

- 2011 청춘콘서트 진주편(8월28일) 안철수 박경철 대담 내용 중에서

△ 2011 청춘콘서트에서 '사회환원'에 대한 그의 소신을 말하고 있는 안철수 원장.

대담 내용에서 보시는 것처럼 안철수 원장은 의대시절부터 ‘사회환원’에 대한 소신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의대시절 무이촌에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주민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접했고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이들에게 다시 돌려주고자 한걸음 한걸음 소신있게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의료 연구에서 컴퓨터 백신 연구로 옮기게 된 계기도 그 당시 막대한 국가적 피해를 막음으로서 자신이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겠다는 소신으로 행동한 것이고, 컴퓨터 백신 벤쳐사업가에서 미국 유학과 카이스트 교수로 옮긴 것도 자신의 성공 경험을 나누어줘서 다른 벤쳐기업들의 성공확률을 높여줌으로써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겠다는 소신에서 행한 행동이였습니다.

안철수 원장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늘 “사회에 대한 환원정신”이 함께 했습니다.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아왔고 사회가 나에게 이런 기회와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나의 성공은 불가능한 것이였기에 당연히 다시 사회로 돌려주어야 한다는 환원정신. 이 '환원정신'은 안철수 원장이 새로운 도전을 할 때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의 재능으로서가 아니라 자산의 재산을 통해 그의 소신을 행하려 하는 것일 뿐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청춘콘서트를 취재하러 다니면서도 직접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춘콘서트를 준비하기 위해 전국에서 2700여명의 희망서포터즈 봉사자들이 구슬땀을 흘렸는데, 이 친구들에게는 늘 빚을 졌다며 청춘콘서트가 끝나면 항상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악수를 나누고 격려를 해주고… 언론 인터뷰는 모두 거절해도 희망서포터즈들이 요청한 강연에는 항상 응해 주었습니다. 이 친구들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말이죠.  

안철수 원장은 가까이서 조금씩 더 알아갈수록 더욱 신뢰감이 생기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대학생 시절부터 가져왔던 자신의 소신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묵묵히 지켜온 사람,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안철수 원장의 전격적인 '사회환원'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국민의 세금을 듬뿍 받고 성장한 한국의 돈 많은 대기업 관계자 분들도 이런 아름다운 행보에 많이 동참해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너무 과한 기대는 아니겠죠.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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