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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평화

고향 못갔지만 큰 위로 되었던 새터민 통일체육축전

북한에 고향을 둬 추석 명절을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한 새터민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명절이란 보고 싶은 가족들을 떠올리게 하는 고통스런 나날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리고자 어제 서울 양강중학교 운동장에서는 "통일체육축전"이라는 축제가 열렸습니다. 평화인권단체 좋은벗들이 9년째 진행하고 있는 이 행사는 새터민과 지역 시민들이 자원봉사자로 만나 함께 만들어가는 남북한동포 가을 운동회입니다. 오랜만에 선선하고 화창한 일요일이여서 그랬는지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었습니다. 새터민 340여분, 자원봉사자 360여명 총 700여명이 참가하여 즐거운 축제의 장이 되었네요. 비록 한국 정부는 북한과 강경한 대응을 내세우며 갈등을 빚고 있지만, 남북한 주민들은 이렇게 서로 하나가 되는 화합의 장을 만들어낸 것이지요^^  

우선, 새터민들의 고향에 대한 애환을 헤아려 다함께 추석맞이 합동차례를 지냈습니다. 차례를 지내는 동안 여러 새터민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차례가 끝나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명절이지만 고향 어머니 산소에 가볼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나마 대신하니 마음이 너무 편하다. 그냥 눈물이 난다." 합니다. 이런 자리라도 마련되어 참 다행이다 싶어 자원봉사하는 저도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오전에는 신나는 체육대회가 열렸습니다. 백미터 달리기, 림보, 줄다리기, 발 묶고 달리기, 큰공 굴리기 등 어렸을 적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재미난 경기들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남한과 북한 이런 선입견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어색해하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씩 경기가 진행되어감에 따라 점점 활기차 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경기에 출전할 사람을 선발하려 해도 아침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점심을 먹고 나서는 서로 출전하려는 모습으로 바뀌어 나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사람이 친해지는 방법 중에 몸으로 부대끼는 것이 가장 빠르다고 하잖아요. 오늘 하루 만났을 뿐인데 남과 북은 순식 간에 가까워졌네요.

새터민들과 함께한 여러가지 경기들입니다.^^

△ 축구를 빼놓을 수 없죠. 남한팀 북한팀 총 4팀이 출전했는데, 결국 북한팀이 우승했습니다.^^ 얼마나 거칠게 달리던지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야생마 무리를 보는 것 같았네요. ㅋㅋㅋ


△ 림보입니다. 허리 유연성은 남한보다 북한이 더 나은 것이 증명되었습니다.ㅋㅋㅋ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새터민들이었네요.


△  경기가 끝나고 순위에 따라 선물을 받아가는 새터민들. 마음껏 뛰어놀고 살림살이도 좀 나아졌네요.ㅎㅎㅎ


△ 체육대회의 꽃은 백미터 달리기죠. 과욕이 앞서 넘어지는 분들도 있었지만 가장 흥미진진했던 경기였어요.


△ 박터뜨리기. 한 쪽 박이 시작도 하기 전에 터져버리는 바람에 열기가 푹 새고야 말았지만 그래도 즐거웠네요. 박을 터뜨리자 "우리는 하나" 라는 플랭카드가 활짝 펼쳐졌어요.  


△ 발 묶고 달리기. 남과 북이 이렇게 합심한다면 금새 통일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요.^^

남한에 오고나서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계신 새터민들이 우리나라에 2만명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식사 후 마주친 새터민 한분께 추석 어떻게 보내셨냐고 물었더니 가슴 막막해지는 이야길를 들었습니다.

"나도 할 수 없지... 나도 할 수 없지... 나도 할 수 없지... 왜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 안나겄소?"

"나도 할 수 없지"라고 연거푸 이야기하시는데, 가슴 한 켠이 아련해졌습니다. 저는 가족들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집에 들어가기가 짜증이 날 때가 많은데, 이 분들께는 평생 한번이라도 통일되어 그리운 어머니 아버지 얼굴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네요. 저도 모르게 애잔한 마음이 들어 눈물이 고였습니다.

운동회의 마지막은 강강수월래였습니다. 손에 손잡고 신나게 어울리며 잠시나마 마음의 통일을 느껴보았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남과 북이 오늘 여기 온 사람들의 마음만 같았으면 금새 통일은 앞당겨질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 남과 북이 서로 손에 손 잡고 "강강수월래~"

운동경기가 마무리되고 자연스럽게 노래자랑 무대가 마련되었습니다. 마음껏 노래하고 춤추는 새터민들의 모습을 보며 참 기뻤습니다. 우리 민족은 정말 끼가 많은 훌륭한 민족이란 걸 새삼 느꼈습니다.^^


△ 마음껏 노래하고. "동포 여러분, 반갑습네다~"


△ 새터민 예술단에서 신나는 춤사위를 보여주었어요. 춤 하면 정말 북녘동포들이 쵝오죠~ 탄성이 절로 나왔어요.


△ 아이들이 신났네요. 덩실 덩실 춤추는데 정말 귀워였어요. 아이들은 정치를 모르죠. 이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자유롭게 남과 북을 왕래하며 함께 어울릴 수 있었으면 하네요.

새터민 중에 이곳 행사장에서 고향 이웃을 만나신 분이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았었는데, 이곳 남한에 와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서로 뜨거운 눈물을 보였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제 마음도 짠 했습니다.


△ 북한에 있을 적에 친하게 알고 지내던 고향 이웃을 만난 두 새터민.


△ 자신의 장기를 뽐내는 새터민들에게 큰 박수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무대 위에서 실수해도 박수쳐주고 환호해 주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 행사가 끝날 무렵, 푸짐한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열심히 참여한 분들께 선물을 주고 받으며 더 기뻤네요.


△ 오늘 하루 남과 북의 주민들이 함께 통일열차를 탔습니다. 언제 목적지에 도착할지 아직 예상할 수 없지만, 일단 출발은 했습니다.^^ 


△ 선물 한 아름씩 들고 집으로 향하는 새터민들의 발걸음이 참 가벼워 보입니다.

오늘 행사가 새터민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새터민 한 분에게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너무 즐거웠어요. 추석에 고향에 가지 못했는데, 고향 생각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요. 정말 위로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스가 다 날아갔어요. 고맙습니다!"

눈시울을 글썽이시더라구요. 운동장에는 "다시 만나요" 라는 북한가요가 울려퍼지고 있었는데, 음악과 새터민의 눈물이 오버랩되면서 제 눈에도 눈물이 고였습니다. 지난해 탈북해서 대전에서 살고 있다는 한 새터민은 "고향에 두고온 가족을 생각하니 먹먹하다, 늦은 차례지만 다른 지역 새터민과 함께 어울릴 수 있어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다"고 하시며 제 손을 꼭 잡아주었습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새터민들이 많은 것들을 느끼고 가시는 것 같아 참 기뻤습니다.^^ 

새터민들이 고향에 대한 시름을 접고 오늘 하루 즐거운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100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있었습니다. 행사장에 남아서 뒷정리를 도와주다보니 자원봉사자들의 숨은 노고들이 곳곳에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가 이런 좋은 취지를 알고 동참하신 무보수 자원활동이었습니다.


△ 행사장 쓰레기를 다 줍고.


△ 만국기를 달았다가 철수하고. 하루 종일 일하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다들 웃으시며 농담하시며 뒷정리를 하시더군요.

행사 뒷정리가 모두 끝나고 자원봉사하느라 고생한 분들의 소감도 들어보았습니다. 

"난생 처음보는 새터민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많이 두려웠는데, 직접 만나고 보니 우리랑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너무 편했다"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구분짓는 마음들을 내 안에서 보았다. 곧 알아차릴 수 있었고 반성이 되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새터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참 기뻤다." 


하루가 정말 보람찼던 것 같습니다. 남과 북의 통일도 이렇게 만들어가면 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듯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통일되는 그날까지 오늘만 같았으면 참 좋겠네요. 남과 북이 이렇게 직접 만나서 몸으로 부대끼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쌓아간다면,면, 이 분들로부터 진정한 통일은 시작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너무나 보람차고 즐거웠던 하루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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