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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어릴 적 엄마가 준 상처로 지금도 힘들게 삽니다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이 없는 집안이 어디 있겠습니까.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릴 적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주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어린 아이는 부모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부모가 아이에게 휘두른 폭력은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됩니다. 하지만 부모로부터 그런 안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개인의 인생이 평생 불행해야 하는가 반문해 봅니다. 아무리 부모에게 안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하더라도 지금부터는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오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에서는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청년의 간절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부모와의 갈등이 상처로 남아 지금도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와 같이 저는 들었습니다. 한 청년이 법륜스님에게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 질문자 :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가 있어 안 해 본 치료가 없습니다. 제 몸의 병은 엄마를 미워하는 데 그 근본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에는 어릴 적 엄마가 저에게 했던 욕이나 폭력 등이 생각나 펑펑 웁니다. 심할 때는 엄마가 얘기하시는데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리기도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엄마를 바라봐야 하나요. 자꾸 엄마를 피하고만 싶습니다. 

법륜스님은 차분히 질문을 듣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 법륜스님 : 질문하신 분의 어머니가 이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겠지만, 이분은 어머니의 행동 때문에 병이 들어 있어요. 이건 마치 우리가 “사랑해.” 하면서 포옹하지만 상대에게는 엄청난 성추행으로 느껴지는 것과 같아요. 그러니 무엇이든 자기 생각대로, 일방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그걸 자주 잊어버리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자기가 상대방에게 어떤 상처를 입히고 있는지 모르면서 말입니다.
 
이런 경우처럼,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는 게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자식이 어리다고 욕설이나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때 어머니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거나, 경제적으로 너무 쪼들리고 삶이 너무 고달파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한 것이지요. 자신의 삶이 너무 힘들어서 자식이 상처 입는 것까지 돌아볼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말은 엄마지만, 그때 엄마는 나이가 겨우 서른 몇 살밖에 안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서른 몇 살이면서 애 한둘 낳아 키우는 여성들을 보면 온갖 눈물과 하소연을 하고 삽니다. 그 나이가 그렇게 사는 나이 아닙니까? 그러니 애가 울고 떼를 쓰면 두들겨 패기도 하고, 야단도 치고, 고함도 치게 됩니다. 엄마가 어떤 나쁜 의도를 갖고 한 것은 아니에요, 잘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러니까 엄마의 삶이 그만큼 피곤하고 고단했다는 걸 반증하는 겁니다. 자신의 삶이 피곤하고 고단했다는 자기 하소연, 자기 몸부림이에요. 그게 자식에겐 상처가 되었지만 …….

이걸 이해하게 되면 엄마를 미워하는 감정은 없어지게 됩니다. 공사판 옆을 지나가다가 옥상에서 뭐가 떨어져서 다쳤다면 속상하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고 증오하지는 않잖아요. 치료는 받아야 하지만 미워할 일은 아니지요. 누군가 의도적으로 나를 때린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 우선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것만 우리가 올바르게 이해하면 미움은 없어집니다. 상처는 있더라도 상처에 따르는 미움은 없어집니다.
 
그러니 이젠 오히려 엄마를 미워한 것에 대해 참회해야 합니다. 엄마가 잘하고 내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사실 엄마는 미워할 대상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내가 이걸 착각해서 엄마를 미워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참회해야 합니다. 엄마를 미워한 것은 내가 잘못 생각해서, 내가 어리석어서 생긴 감정이라는 걸 참회해야 합니다.

내가 제일 상처 입었다고 하는 그 시점에 엄마의 삶이 어땠는지를 살펴보세요. 만약 내가 초등학교 때 두들겨 맞고 욕을 들었다면, 그때의 엄마 나이를 대충 계산해서 “엄마 그때 어떻게 살았어? 아빠하고는 어땠어?” 이렇게 여쭤보세요. 이렇게 대화를 나눠 보면, 그때 엄마의 삶은 절대로 편안한 삶이 아니었을 거예요. 삶이 얼마나 고달팠으면 어린 자식한테 성질을 부리고 아이를 두들겨 패며 욕을 하고 그랬을까요? 그렇게 엄마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하게 되면 미움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이분은 자기 상처에만 빠져 있어서 엄마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 설령 그 상처가 엄마로부터 왔다고 쳐도 지금은 엄마가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는데도  이 상처를 내가 갖고 있으니 그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누구입니까?

예를 들어, 내가 강제로 마약주사를 맞았다고 해 봐요. 그때는 안 맞으려고 했는데 상대가 나한테 강제로 주입을 했어요. 일 년이 지난 뒤 그 사람은 나를 풀어주고 가버렸어요. 그러면 나는 마약을 안 맞아도 되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누구의 요구 때문에 맞는 건가요? 내 요구 때문이에요. 그럴 때 “이건 내 잘못이 아니고 그 사람 잘못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건 옳지가 않아요. 처음에는 내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지만 현재는 내가 중독되어 내가 원하니 내 문제가 되는 거죠.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되지 그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지금 우리들 각자가 갖고 있는 까르마의 원인이 엄마로부터 왔든지 아빠로부터 왔든지 내가 속한 사회로부터 왔든지 그 치료의 주체는 바로 나입니다. 해결의 주체는 부모가 아니에요. 부모를 미워한 내가 문제예요. 지금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이렇게 부모 탓을 하는 것은 전생 탓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어머니를 이해하면 내 속에 있는 미움의 까르마가 없어지고,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것은 계속될 뿐 아니라 자식에게도 유전이 됩니다. 그러니까 나를 위해서 어머니를 이해해야 합니다. 어머니를 이해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길이에요.

이런 관점에서 어머니에 대한 이해, 어머니에 대한 참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것을 어떻게 치료할까요? 몸이 많이 아프면 요양을 해야 합니다. 사회생활을 잠시 멈추고 격리 되어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면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치료를 받습니다. 그런 것처럼 어머니와의 감정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면, 볼 때마다 병이 날 지경이다 싶으면 일단 안 만나는 게 좋겠죠. 그리고 참회기도를 해서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치료가 되었다 싶으면 이게 완치가 됐는지 안 됐는지 검사를 해 봐야겠지요. 그럴 때 어머니하고 다시 만나보아서 자신의 감정이 또 뒤집어지면, 그때 뒤집어지는 자기를 보면 돼요. ‘아, 이 상처가 아직 덜 나았구나. 이렇게 다시 재발하는구나. 아직도 내 까르마가 남았구나.’ 이렇게 해서 내 까르마의 뿌리가 어느 정도 남았는지 시험해 보는 거예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뒤집어져도 괜찮아요. 공부가 되는 거죠. 뒤집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아, 아직도 안 되는구나.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감정이 폭발하면서, 넘어져가면서 이렇게 공부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실패를 해도 두렵지 않지요. 이게 바로 우리가 세상 속에서 하는 공부예요. 수행 중이라는 거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야 공부가 끝난 게 아닙니다. 이 세상 속에서 실수해가면서 살아도 돼요. 이러면서 나날이 좋아지는 거예요. 이렇게 계속 공부해 보세요.

마음이 밝아진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지고, 질문하신 분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덥고 무거웠던 강연장 전체가 시원하게 밝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어머니를 이해해야 합니다” 라고 말하실 때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면 계속 자신의 인생이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는 그 이치가 분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로서는 얼마나 삶이 고달팠으면 그랬겠는지 알면 자연스럽게 미움이 풀린다. 저도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부모님의 입장에서 어땠을까 생각해보지 못했고 늘 부모님에게 상처받은 것만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마약주사에 비유를 했듯이 아무리 부모님이 어린 나에게 욕하고 상처를 주었다 하더라도, 이제 성인이 된 내가 아직도 그 영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건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처음에는 내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니지만 현재는 내가 중독되어 내가 원하니 내 문제가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 청천벽력처럼 머리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비단 부모 자식 간의 문제이겠습니까. 인생의 모든 문제를 이렇게 주체적으로 풀어가야겠구나 깊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