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강남구 개포동 판자촌 구룡마을에 수해복구 자원봉사를 다녀왔습니다. 트위터에서 이곳은 무허가 판자촌 지역이라 구청의 지원이 되지 않으니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게다가 김제동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내일 구룡마을에서 봅시다” 하는 바람에 많은 네티즌들의 관심이 이곳 구룡마을로 집중되었죠. 때마침 제가 다니고 있는 '정토회'라는 단체에서도 긴급구조단이 모집되어 수해복구지원에 따라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토회 긴급구조단은 서울지역에서만 1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어 방배동 일대와 구룡마을 일대 지하에 매몰된 흙더미를 퍼내고 청소하였습니다. 때마침 현장에서 김제동씨도 만나서 참 좋았습니다. 재난때 더욱 빛을 발하는 자원봉사, 그 생생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전합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개포동 구룡마을에서도 맨 꼭대기 산자락에 위치한 판자촌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산 아래에 있어서 많은 흙탕물과 토사들이 밀려왔던 곳이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많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닥다닥 판자로 만들어진 집들이 이어져 있는데, 강남 한복판에 이런 동네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었습니다. 대학시절 제3세계 구호활동을 많이 다녔는데, 비에 젖은 가구들 빨래들이 길가에 늘어선 모습이 마치 인도의 빈민가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 현장의 피해상황은 훨씬 끔찍했습니다. 마을 전체에 젖지 않은 물건들이 없었습니다.
제가 방문한 집은 아주머니 한 분이 혼자살고 계셨습니다. 침대, 티비, 이불, 서랍장 온갖 집안살림이 모두 젖었고 진흙 더미에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일을 시작할까 봉사자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쪽 구석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눈물을 훌쩍 흘리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입가에 계속 탄식을 내뱉으셨습니다. 순간 마음이 찡 해지더군요.
▲ 처음 도착했을 때 집안 모습입니다. 참담했습니다.
아주머니의 아픔을 하루빨리 덜어드리고픈 마음에 그 순간부터 죽어라고 일했습니다. 일단 젖은 가구들을 밖으로 다 꺼내고 햇빛에 말렸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그 중에 필요한 물건들만 골라내셨구요. 이불이 물에 젖으니까 정말 무겁더라구요. 장정 둘이서 겨우 낑낑 거리며 드러내었답니다.
▲ 막힌 하수구는 하루종일 이어진 삽질에도 불구하고 흙덩이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습니다.
중간에 김제동을 만났습니다. 어제 트위터에서 자신도 구룡마을에 오겠다 했었죠. 흰티셔츠에 흰모자를 쓰고 청년들 여럿과 함께 트럭을 타고 나타나시더군요. 저는 왠 마을 청년회 사람인가 했습니다.ㅋㅋㅋ 축대 쌓으러 간다고 하며 저희들 보고 “똑바로 안해” 농담을 합니다. 김제동씨는 주로 모래주머니를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트럭에 싣고 무너진 축대를 쌓았습니다. 땀 범벅이된 모습을 보며, 어떻게 저런 연예인이 있을까 순간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김제동이 슬쩍 지나가며 “열심히 하자” 계속 격려해 주어서 더욱 힘이 났던 것 같습니다.^^ 김제동과 함께 모집된 트위터 봉사자들은 그렇게 구룡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을주민들에게 희망을 선물했습니다.
▲ 저희 봉사팀들은 여성분들이 많았는데, 저희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며 "여자들이 군대 다녀온 것 같네요" 합니다. 일하며 웃고 또 웃고 했네요.
곳곳에서 온 봉사자들은 소속도 다르고 나이도 달랐지만,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수재민들의 아픔을 걷어내는데 힘썼습니다. 집안에 가구들이 빠져나가고, 장판을 걷어내니 조금씩 조금씩 깨끗해져갔습니다. 밖에서는 진흙이 잔뜩 묻은 가구들을 물로 깨끗이 씻어내었습니다. 잠깐 쉬었다가 정토회 긴급구조단에서 제공하는 간식을 배불리 먹고 다시 마른 장판을 깔고 수건으로 바닥을 깨끗이 닦았습니다. 장판이 반짝 반짝 거리자, 마치 처음 그대로 모든 물건들이 되돌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주인 아주머니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합니다.
▲ 열심히 딱아내고 쓸어내고 했더니, "짜잔!" 이렇게 변했습니다.^^
▲ 이곳은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집입니다. 침수된 방을 깨끗이 닦아 드리고, 안마 해드리는 중.
해가 저물 무렵, 일이 마무리되고 아주머니와 사진 한 장 찍고 판자촌 억덕길을 내려왔습니다. 봉사자들 옷에서는 땀냄새가 자욱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잘 쓰인다는 기쁨이 이런 건가요? 함께 나누는 기쁨이 이런 건가요?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았습니다.
▲ 함께한 자원봉사자들. 서로 이름도 잘 모르고 낯설었지만 마음만은 하나로^^
땀흘리면 더 빨리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임시상황실 천막으로 내려와서 가볍게 봉사자들과 소감나누기를 했습니다. 저 멀리 대한민국 부자들의 상징 타워팰리스가 보이더군요. 가난과 부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모습을 보며 왠지 씁쓸한 마음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하루 빨리 이뤄지기를 바래보았습니다.
▲ 저 뒤에 타워팰리스가 보이시나요? 대한민국의 빈부격차가 한 장면으로 다가오더군요.
봉사자들은 내일도 다시 이곳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습니다. 수돗가에서 서로 물을 틀어주고 세수를 하며 가슴이 훈훈해졌습니다. 봉사라는 것, 함께 나눈다는 것, 그것은 남을 돕는 것을 넘어서서 내가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는 길임을 느끼는 하루였습니다.
▲ 봉사자들 다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내일 있을 구호물자 배분을 위해 트럭에 짐을 싣는 것으로 오늘 자원활동을 일정을 모두 마무리 하였습니다.^^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판자촌 구룡마을. 구청의 어떠한 지원도 없는 곳. 그렇지만 저희들은 오늘 아침 9시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함께한 봉사자들은 고작 25명에 불과했고 실제적인 도움은 5-6가구 밖에 지원 못한 미약한 힘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의 선의를 보고 마을 주민들이 삶의 희망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일이 되겠습니까. 돌아오는 길에 마을 주민들이 고맙다고 연거푸 인사를 해주십니다. 가슴 밑바닥에서 잔잔한 뜨거움이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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