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법륜스님 즉문즉설

땅 파라 했다가 메워라 했다가... 군생활 짜증납니다

군대에서 가장 짜증나고 싫은 일 중에 하나가 상관이 이래라 그랬다가 저래라 그랬다가 작업 지시를 수시로 뒤바꾸는 상황입니다. 소대장님이 땅을 파라고 지시하셔서 열심히 땅을 파 놓으면, 행보관님이 오셔서 다시 묻으라 하십니다. 겉으로 표현은 못하지만 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저도 이등병 시절 병사 식당 설거지대를 철거하는 작업을 이틀에 걸쳐서 했는데, 다른 간부님이 오셔서 다시 원위치 시키라고 해서 불같은 화를 주체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ㅎㅎ 법륜스님의 군부대 즉문즉설 강연에서 한 병사가 이런 군인들의 고충을 질문했고, 법륜스님의 답변이 정말 재미있고 신선했습니다.

먼저 추천을 =>    <=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병사질문 : 군생활을 하면서 상관이나 지휘관이 이건 좀 아니다는 업무를 시켜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제는 땅을 파라고 시켜서 열심히 파 놓았더니, 별로다 하면서 다시 묻으라고 했습니다. 일주일 전에는 여기 있는 나무를 옮겨 심어라 해서 옮겨 놓았더니, 이곳은 아닌 것 같다며 다시 원래의 위치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일부러 골탕 먹이려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안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상관이나 지휘관이 싫습니다. 이럴 때는 무슨 마음을 먹어야 합니까?

법륜스님 : , 절 집안하고 똑 같다. 절 집안도 그렇습니다. 집안에 어른이 많으면 한 사람은 이것 하라고 하고, 한 사람은 저것 하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군대 고쳐주려고 왔는가, 내가 내 생활 잘하려고 왔는가

이런 경우는 허다하다. 아시겠어요? 만약에 회사에 취직을 해도 이런 일이 생깁니다. 사장이 와서 시키는 일 다르고, 부장이 와서 시키는 일 다릅니다. 절에 와도 이런 일 생깁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것을 수행 차원에서 이야기해요. 어차피 이것을 시정하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시정이 될까, 안될까?

병사 : 안됩니다.

법륜스님 : 안되겠지. 그러면 내가 대한민국 군대 고쳐주려고 군대에 왔나? 내가 군대 생활 잘하려고 군대에 왔나?

병사 : 군대 왔으니까, 문제 없이 좀 잘 살려고 왔는데...

법륜스님 : 그래! 그러면 내가 문제없이 잘 사는 길을 일러 줄께. 나도 그런 경험을 하면서 굉장히 힘들었어. 봉암사 부목으로 살 때 조실 스님께만 조용히 말씀드렸어요. 여기서 부목살이 좀 하겠다고 그랬더니 뭘 그런 것을 하냐고 하셔서 제가 너무 남들 위에만 있어서 나도 모르게 자꾸 시키는 것만 몸에 익혀지니까 저를 좀 정화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러니 남들한테 이야기하지 마세요했어요. 그런데 막상 살아 보니까 이 습관이란 놈이 무섭지요. 여기 올 때는 내 공부하러 왔지 봉암사 고쳐주러 온 것 아닌데, 와서 보니까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고 온 천지가 문제 투성이였어요. 저는 뭐든 열심히 하는 성질이 있어요. 하루는 땀을 흘리며 장작을 막 열심히 패고 있으니까, 조실스님이 나보고 빙긋이 웃으면서 뭐라고 하느냐.

여보게, 자네 없을 때에도 봉암사 잘 있었다.”

마치 내가 하는 짓이 내가 없으면 봉암사가 안 될 것처럼 행동한 거야. 내가 여기 온 것은 봉암사 장작 패주러 온 것이 아니라 이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서 왔는데, 일에 대한 집착을 장작 패는 것으로 대상만 바꾸었지 그 자체는 똑같이 작용을 한 거야. 그때 내가 깨쳤어요. 일부러 하는 일 다 그만두고 나를 돌아보러 여기 와서는 또 내 습관에 휘말려 있었구나. 이것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화두를 던져 줄 테니까 한번 들어보세요. 불경에 이런 말이 있어요. 일체 중생 모든 생명 가진 것에는 다 불성이 있다. 한 스님이 선방에서 정진한다고 마루 위에서 참선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마른 뼈다귀를 콱 콱 콱 씹었다 뱉었다 이러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쓸데없는 짓을 하는 저 개는 불성이 있는가. 의문이 든 거예요. 그래서 스승한테 가서 물었어. “개새끼한테도 불성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스승이 개새끼한테 무슨 불성이 있냐? 없다.” 이런단 말이에요.

스승의 말처럼 개한텐 불성이 없다를 받아들이면 경전이 틀렸지? 경전이 틀렸다 이 말은 내가 경전 못 믿겠다 이 말이 되잖아. 그럼 부처님이 하신 말씀도 못 믿으면서 깨달음을 얻겠어, 못 얻겠어?

그럼 반대로 스승님, 경전에는 불성이 있다고 써놓았던데요.” 이렇게 말하면 누구 말을 못 믿는다? 스승 말을 못 믿지. 그럼 스승 말을 못 믿으면서 수행해서 깨닫겠나, 못 깨닫겠나? 못 깨닫겠지.

스승 말을 못 믿거나 부처 말을 못 믿거나 둘 중에 하나인데, 혼자서 스승 말이 맞나, 경전이 맞나?’ 이러면 둘 다 못 믿는 거야. 스님 말도 100퍼센트 믿고 부처님 말도 100퍼센트 믿는다 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개한테 불성이 없다 하는 이 ()” 가 내 눈을 멀게 하고 내 귀를 멎게 한다. 이게 목구멍에 가시처럼 탁 걸려서... 앉아도 무라...’ 누워도 무라...’ 이걸 화두라고 그래요. “있다없다는 극단에 속하는 것이에요. 둘 다를 떠나야 되요. 둘 다를 떠나야 진정으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 도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사단장말이 맞나?’ ‘그럼 여단장 말이 맞나?’ ‘누구 말을 들어야 하나?’ ‘높은 사람 말 들을까?’ ‘아니다, 내 가까이 있는 사람 말 들을까?’ 이건 내 머리 굴리는 것이에요. 내 머리를 굴리지 말아야 돼. 그럼 어떻게 될까?

병사 : 생각 없이 살게 됩니다.

법륜스님 : 그래! 사단장이 파라하면 파는 거야. 여단장이 메워라하면 메우는 거야. 나무 심어라 하면 심어놓고, 또 옮겨라 하면 옮기면 되는 거야. 시키는 대로만 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노예가 되는 것이고, 내가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하는 거야. 이렇게 모순적인 것이 다가와도 나한테는 모순이 없는 거야. 내가 나를 움켜쥐니까 모순이 생기는 것이지. 내가 나를 놓아 버리면 아무 모순이 없어.

누가 어떤 일을 시켜도 항상 "예, 알겠습니다" 하며 나를 비우는 연습을 한다

그럼 사단장님이 내 뺨을 한 대 탁 때렸다고 치자. “너 이놈 파라는데 왜 안 팠냐?” “여단장님이 파지마라 그랬는데요.” 이러는 것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이야. 한 대 탁 때리고 왜 안팠노?” 이러면 죄송합니다. 파겠습니다.” 이러면 돼. 파고 있다가 또 여단장님이 와서 파지마라 했는데 왜 팠냐?” 이러면 죄송합니다.” 이러고 그냥 안파면 돼.

이런 내가 되느냐를 연습하라는 말이야. 이 모순 속에서 누가 깨닫는다? 내가 깨닫는다. 그 두 분은 나를 깨우쳐 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지만, 이걸 긍정적으로 탁 받아들여서 나를 놓아 버리게 되면 무아를 내가 체득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세속적으로 생각하면 이래도 못하고 저래도 못하고 사면초가에 빠져서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항변하게 된다. 나를 탁 놓아버리면 두 개의 모순이 그냥 사라져 버려요.

말은 쉽지만 될까? 안 될까? 안되지. 그러니까 이걸 과제로 삼으란 말이야. 군대에 있다가 이 한 소식만 깨치고 나가면 절에서 스님 10년 하는 것보다 낫다.

병사들의 박수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집니다. 평소 병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한 답변이었기 때문인지 다른 질문들 보다 박수와 환호 소리가 훨씬 컸습니다. 어차피 군대 시정해주러 내가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또 시정해 달라고 요구한다고 해서 시정이 안되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수행 차원에서 내가 나를 비우는 연습으로 받아들여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짜증만 났던 그 상황이 오히려 나의 인격이 성장시켜주고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황금 같은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군 장병 여러분 힘내세요!

이 블로그의 업데이트 소식이 궁금하다면 @hopeplanner 을 팔로우하세요.
이 글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면, 아래의 추천 단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