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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법륜스님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부처님오신날입니다. 지금 이 시간이면 전국 사찰에서 봉축행사가 진행 중이겠지요. 아무리 날라리 불자라고 하더라도 오늘만큼은 인근 사찰에 가서 비빔밥 한 그릇씩 먹고 오실 테지요. 저는 평소 다니고 있는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정토회 법당을 찾아갔습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어서 그런지 옷도 눅눅해 지고 눈도 침침했지만, 법륜스님의 봉축 법문을 듣고 나니 마음만은 상쾌해지고 한결 가벼워지더군요. 오늘 봉축법회에서 하신 법륜스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불교신자가 아니어서 절에 직접 찾아가진 못하셔도,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이니까...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을 한번쯤은 생각해보는 의미있는 휴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아래 글은 방금 법륜스님의 봉축법회를 들으며 직접 타이핑 한 것입니다.^^
아이고 손가락 아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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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륜스님 :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금세기에 들어서 특별한 날입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되신지 2600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날이니 평생 한번 마주칠까 말까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를 보면 태어난 아기가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었고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 속에 불교의 궁극적 이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

태어나자마자 걸으셨다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요? 우리는 늘 세상에 의지하고 남에 의지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남으로부터 사랑받으려 하고 남으로부터 이해 받으려 합니다. 중생심의 가장 큰 특징이 이 의지심입니다. 그런데 부처라는 것은 모든 의지심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입니다. 스스로의 두 눈으로 세상을 보고, 스스로의 두 발로 우뚝 서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걸으셨다고 묘사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면 만족감을 얻고,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만족을 느낍니다. 그래서 늘 행복과 불행을 되풀이합니다. 이것을 윤회한다고 하지요. 만족감이 극에 달하면 천상이라 말하고, 불만족감이 극에 달하면 지옥이라 합니다. 이 사이를 6등분해서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이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중생은 천상에 태어나기만을 바랍니다. 항상 만족감 속에서 살고 싶어 하지요.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은 행복과 불행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자유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부처님이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이 육도윤회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 하늘 위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은 존귀하다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천상이라는 것은 신들의 세상을 말하고, 천하라는 것은 인간의 세상을 말합니다. 신들의 세상은 형이상학적인 세상, 즉 생각을 일으켜서 만들어 놓은 관념을 말합니다. 더 이상 관념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천상의 세계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는 것이죠. 인간의 세상은 돈, 건강, 쾌락과 같은 물질적이고 형이하학적인 것을 말합니다. 더 이상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천하의 세계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프라세나짓 왕의 질문에 부처님은 “그 무엇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자기가 자기 인생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행복이 상대로부터 온다든지, 나의 행복이 누구 때문에 기인한다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괴로움을 합리화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 때문에 못 살겠다, 누구 때문에 괴롭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자신을 항상 행복한 상태로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삼계개고 아당안지 : 뭇 중생들이 괴로움에 허덕이니 이를 편안케 하리라

삼계라는 것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뭇 중생들을 말합니다. 그들의 삶을 보니 다 괴로움 속에 헐떡거리고 있다. 모두가 다 괴로워하고 있다. 그러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하게 하리라. 이런 의미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탄생에 담긴 의미 : 나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해지는 길

불교의 궁극적인 이상이 이 탄생의 모습에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자기 삶에 있어서 누구를 핑계로 자신의 괴로움을 합리화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수행 정진해서 괴로움이 없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의미이며 대승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위로는 깨달음을 구한다는 “상구보리”의 의미입니다. 수행을 해서 자유로운 사람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괴로움이 없어진 사람들은 그럼 아무 일도 안하느냐. 둘째, 괴로움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돕는 길이 있습니다. 깨우치지 못한 사람들도 감싸 안아서 그들의 고통이 좀 감해지도록 이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행복한 세상은 불교인을 위한 세상이 아니라 불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세상입니다. 깨우치지 못한 자들도 어여삐 여겨서 고통이 덜 한 세상을 만들어서 그들 또한 안온하게 살게 해주자. 이것이 불교에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이유입니다.

깨우치지 못한 이들도 고통을 덜 수 있도록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길을 가셨고, 성도 이후에는 “삼계개고 아당안지”의 길을 가셨습니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어 해탈과 열반을 성취하시고 그 기쁨을 혼자서 만끽하지 않으시고 괴로움에 허덕이는 일체 중생들을 위해서 45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이 가르침을 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르침의 은혜를 입도록 하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깨우치지 못한 이들도 고통을 덜 수 있도록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 하셨습니다.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는 곳에 나타나셔서 전쟁이 얼마나 무익함을 깨우쳐 전쟁을 멈추게 하셨고, 전쟁을 일이킬 마음을 가진 왕에게는 그것이 얼마나 나쁜 결과를 가져옴을 알게 하시어 그 의도를 포기케 하셨습니다. 또 계급 제도라는 것으로 인해 인간이 차별받고 남녀가 차별 받는 세상에서 그것이 본래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계급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의식 때문에 비롯된 것임을 깨우쳐서 계급차별과 성차별을 버리도록 깨우쳐 주셨습니다. 또한 부처님의 승가 안에서는 그런 차별 자체를 용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그릇됨을 바로 잡으셔서 법을 깨우치지 못한 자라도 고통을 덜고 기쁨을 얻도록 도우셨습니다.


△ 사진 / (관정의식) 당신은 미래에 부처가 될 것이다는 축언과 수기를 스님에게 받는 의미

행복한 세상 만들기를 발원하며

불기 2555년, 세상으로 말하면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는 물질적인 절대 빈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북녘동포들을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아직도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도 행복한 세상 만들기입니다. 간단한 질병도 치료하지 못해서 고통 받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났는데도 글을 몰라 제 이름자도 쓸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해서 글을 읽고 셈을 할 수 있도록 기초교육을 제공하는 것 또한 행복한 세상 만들기에 속합니다. 환경 파괴적인 행위를 멈추게 해서 환경 재앙을 막는 것도 행복한 세상 만들기이며, 분쟁이 있는 곳에 분쟁을 멈추고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 또한 행복한 세상 만들기입니다.

또한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먹고 살만한 데도 불구하고,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살겠다고 하는 이 과욕이 삶의 온갖 불평과 불만 갈등과 고통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결국 빈부격차를 점점 더 벌어지게 합니다. 사치와 빈곤이 한 사회 안에서 공존하는 이것이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가져오게 해서, 절대적 빈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난에 대해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치유해 나가는 것도 행복한 세상 만들기의 중요한 방향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유럽이나 미국이나 한국처럼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계층 안에서도 인간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부부지간에 부모자식 간에 직장 동료들 간에 불화와 갈등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살만한데도 미래에 대한 초조와 불안이 항상 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현재 얼마나 행복한지, 자신이 얼마나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자각하도록 해서, 자신을 괴롭히는데 에너지를 쓰는 게 아니라 타인을 돕고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복하게 하는 수행과 이 세상을 정의롭고 공정하게 만들어가는 사회실천을 함께해 갑시다. 불교인이든 불교인이 아니든, 내 가족이든 내 가족이 아니든,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좀 더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돕는 행복한 세상 만들기 활동이 우리가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다짐해야 할 일입니다. 

△사진 / (욕불의식) 아기 부처님에게 몸을 씻기는 것은 나의 어리석음을 깨끗이 씻어내는 의미

뭇 생명들이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도록

그냥 경전에 쓰여 있는 “천상천하 유아독전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지식으로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이 이런 뜻이구나. 그래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수행정진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이 좋은 법을 우리 이웃들에게 더 많이 전해주어서 그들 또한 행복하게 해주어야겠다는 원을 세우고, 또 내가 사는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합시다. 환경을 위해서 나의 소비를 좀 줄이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부터 나눔을 행하고, 우리 사회의 갈등 해소를 위해 나부터 고집을 내려놓는 이런 원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생명 가진 것들은 다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실제로 살아보면 행복하기 보다는 괴로움이 더 많습니다. 태어난 뭇 생명들이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가 조금이라도 역할을 해봅시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세운 이 서원이 불교란 종교를 넘어서서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전해져서 함께 나누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