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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 즉문즉설

스님께 물었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어떻게?"

복수 하고 싶고 화가 치솟은 경험을 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살다보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당할 때가 있고,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겉잡을 수 없는 부메랑이 되어 큰 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이럴 때 화도 나고 상대에 대한 미움이 극에 달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까요? 치솟는 분노에 무조건 복수만 하려 하다가는 되돌아 올 과보가 너무 크기에 겁도 나고 속앓이만 하게 됩니다. 오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서는 이런 고민을 가진 대학생의 질문이 있었고 스님의 지혜로운 답변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공감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 질문 : 대학의 과 친구들이랑 학점 얘기를 하다가 제게 학점을 아주 낮게 준 교수 얘기가 나왔습니다. 화도 나고 평소 그 교수가 수업하는 방식도 마음에 안 들었기에 교수도 아니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러자 한 친구가 교수님께 고자질을 해서 나중에 그 교수에게 불려갔는데, 교수는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겁이 나서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교수는 제 얼굴에 멍이 들 정도로 주먹질을 했고 갖은 협박을 했습니다. 제 잘못도 있지만 너무하다 싶어 화가 났습니다. 그 교수를 멀리서 볼 때마다 겁도 나고 교수에게 고자질한 녀석도 미워졌습니다. 제대로 복수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 비굴하고 못났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공부하려고 책상에 앉으면 계속 가슴이 두근거리고 답답합니다.

‣ 법륜스님 : 제일 쉬운 방법은 짚으로 교수님과 그 친구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가지고 뺨도 때리고 발로 차고 하면서 실컷 패는 겁니다. 그렇게 분을 확 풀어버리면 돼요. 이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분풀이는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한테 하는 게 낫지요

허수아비가 아니라 실제 사람을 두들겨 패면 보복이 보복을 낳을 뿐, 나한테 이득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분풀이는 허수아비한테 하는 게 낫지요. (웃음) 웃을 일이 아니에요. 물론 질문하신 분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이득인지 머리로는 이해해도 여전히 분이 안 풀린다면 내 제안대로 해보세요. 분도 풀리고 부작용은 없는 방법입니다.

‘다 한 생각일 뿐이구나.’ 하고 깨닫는 계기로 삼아 보세요

다른 방법 하나는 ‘다 한 생각일 뿐이구나.’ 하고 깨닫는 것입니다. 나도 성질이 나서 순간을 못 참아 욕을 했고, 그 녀석도 순간을 못 참아 교수에게 고자질을 했고, 교수도 순간을 못 참아 나를 폭행 했잖아요. 이게 다 한순간을 못 참고 그렇게 자기 분풀이를 해서 생겨난 부작용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나간 일이 오히려 나한테 큰 교훈을 줬다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도 나와 다름없는 인간일 뿐입니다.

물론 그 교수도 잘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못 참듯이 그도 못 참은 겁니다. 그도 나와 다름없는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지나간 일에 자꾸 집착하지 말고, 젊은이니까 앞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자꾸 뒤를 보고 지나간 걸 잡고 있으면 나의 미래를 망치게 됩니다.

저의 경험을 들려주고 싶군요. 어느 날 갑자기 끌려가서 고문을 당한 적이 있어요. 너무너무 비인간적으로 대하고 ‘네 죄를 네가 알렷다.’ 는 식으로 심한 고문을 했어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이런다고 생각하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어요. 만약 그때 나한테 총이 있었으면 다 쏴 죽여 버리고 싶었어요. 그 정도로 화가 났습니다.

내가 저 사람들보다 더 독하구나...

그때 저는 그러는 나를 봤어요. 저 사람은 나를 고문만 했을 뿐이지 죽이려 하지는 않았는데 나는 저 사람을 정말 죽여 버리려고 하구나. 내가 저 사람들보다 더 독하구나. 이런 나를 본 뒤에 그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보기에 악마 같은 그 사람들도 집에 가면 한 자식의 훌륭한 아버지이지요.

또 나를 고문하던 그 사람들이 휴식시간에 이런저런 얘기들을 해요. ‘우리 딸이 오늘 예비고사를 치는데 점수가 좀 잘 나와야 될 텐데, 적어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가야 될 텐데….’ 내가 보기에 악마 같은 그 사람들도 집에 가면 한 자식의 훌륭한 아버지고 한 여인의 사랑하는 남편이지요. 내 눈에는 악마처럼 보이는데, 그들의 눈에는 천사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또 자기들은 나라를 위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이게 다 자기 마음에서 짓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그러자 그들에 대한 미움이 사라졌어요. 그 이후 사회민주화를 위하거나 고문철폐를 위한 활동은 했지만 그들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을 하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내가 만약 분노를 갖고 괴로워하면서 보복하려고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내 인생을 망쳤을지도 모르지요.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치면 우리 인생이 피폐하게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 수업

생각해보십시오. 욕 한마디가 얼마나 큰 화를 불러왔습니까. 내가 욕 한마디 한 것이 이런 화를 불러오는데 누구 한 사람 두들겨 팼다면 어떻게 될까요. 일이 잘못 번져서 내가 감옥에 갈지, 죽을지 모르는 화를 자초할 수도 있는 거예요. 까짓것 죽으면 죽지 하는 태도는 용기가 아니고 무모한 거예요.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니 이 일을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치는 게 얼마나 우리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깨닫게 한 수업이라고 생각하세요.

일어난 일을 돌이켜서 교훈으로 삼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돌이켜보면 내가 고문당했던 일도 결과적으로는 내가 나를 아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좋고 나쁜 게 아니라, 그 일어난 일을 돌이켜서 교훈으로 삼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일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를 알게 된 계기, 화를 내는 것의 과보(果報)가 어떻게 미치는지를 아는 계기로 삼으면 이 사건은 내게 유익한 일이 됩니다. 불행마저도 나에게 유용하게 만드는 이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용기가 없어서 참는 것이 아니라 재앙을 자초하지 않기 위한 지혜로 참는 것

이 일을 두고 자신이 비겁하다든지 비굴하다든지 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처신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이것은 어리석음과 지혜의 문제이지, 용기가 있고 없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용기가 없어서 참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재앙을 더 이상 자초하지 않기 위해 참는 것입니다.

스님의 답변을 들은 대학생의 얼굴에 편안한 미소가 번집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근심에 찬 표정이었는데 말이죠. 공감이 되신 분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집니다. 저는 “용기가 없어서 참는 게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이기에 재앙을 자초하지 않기 위해 참는 것” 이라는 말씀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치우치면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되지만, 지혜로서 마음을 다스리면 ‘다 한 생각일 뿐’ 임을 깨닫는 소중한 계기로 전환되어 버리는 것이지요. 순간적인 감정을 참지 못해 일어나는 우발적인 사건들로 후회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스님의 지혜로운 말씀 속에서 제 모습도 깊이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셨나요?